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조치가 강화하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자금 사정은 취약해지고 있다. 정부가 급히 지원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쇄도한다.
이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소상공인 내실 강화를 위해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단 제언이 나왔다. 영업손실 보상제도와 소상공인 공제조합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단 의견도 제시됐다.
21일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와 이투데이는 공동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소상공인 금융정책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패널로는 이종욱 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과 교수), 신진교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계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김상준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류필선 소공연 정책홍보실장 등이 참석했다.
소상공인 현장에 대해 류 실장은 “영업제한·영업정지 업종의 경우 지난해 150일 이상 영업을 못 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신용평가사 매출정보 조회 결과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기준으로 전국 소상공인의 매출액이 전년 대비 56% 하락했고, 서울 지역의 경우 60% 후반대까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질 매출이 절반 넘게 줄었다는 건 수입도 반이 줄었단 게 아니라 수입 자체가 제로(0)가 됐다는 의미”이라며 “법으로 영업을 막았다면 이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상해야 하는데 이러한 방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종욱 교수도 “방역을 위해 영업을 못 하게 된 곳은 자금흐름 애로 요인이 평상시 대비 3~4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영업에 필요한 임대료, 대출이자, 인건비 등을 충당할 자금이 없어 현금이 흐르지 않고 현금흐름이 잡히지 않으니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짚었다.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을 위해 정부는 자금을 대거 투입했다. 일례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11일부터 4조1000억 원을 투입해 집합금지·영업제한 조치로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지원에 대해 미봉책이라고 지적한다. 기준을 세워 같은 자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이 결국 임시 조치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 교수는 “이번 버팀목자금 지급을 보면 연 매출 4억 원을 기준으로 할 뿐 지원금액 자체는 평등하게 영업금지업종에 300만 원, 제한업종엔 200만 원을 주는 방식”이라며 “각 영업장의 건전성을 따지지 않고 지원금을 주니 받은 사람도 못 받은 사람도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식의 정책은 제삼자 입장에서는 속이 탄다”며 “사람을 잡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상준 교수는 “(버팀목자금 등) 지원금은 소상공인을 긴급히 돕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고 본다”며 “코로나19 시대에 모든 소상공인이 어렵고 재정적으로 힘드냐고 물으면 아닐 수도 있단 대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으로 정의된 소상공인과 스스로가 소상공인이라고 인지하는 경우가 다를 수도 있다”며 “소상공인은 누구고, 코로나19 시대에 피해를 얼마나 입었는지 자체를 정의하는 과정이 먼저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진교 회장도 “전체 소상공인에 같은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의 현 대책은 참 안타깝다”며 “따져보면 소상공인 한 명이 150만 원을 받은 셈인데 이 정도 지원금으론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사업장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봤다.
현장에서는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과 관련한 불만도 제기됐다. 류 실장은 “지난해 3월 실시한 1차 소상공인 긴급안정자금 대출을 3000만 원(한도)까지 받은 사람들은 신규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책자금마다 다르지만, 대출을 받고 폐업하면 대출금을 일시에 상환해야 하는 일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을 활용해 현상을 유지하기도, 폐업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단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는 소상공인과 관련해 정확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신 회장은 “어떤 업종의 소상공인들이 위험 상황에 처해있는지 체계적으로 알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므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관련 기관을 활용해 소상공인 관련 인프라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데이터를 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화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정치권에서 보기엔 공평하게 n분의 일로 나눠주는 ‘평등’이란 개념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관련 데이터 기반을 구축해 중장기적으로 소상공인 건전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각 지방자치단체와 소공연 등 관련 기관이 앞장서 소상공인 데이터를 모으고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틀을 세우자는 제언이다.
신 회장은 코로나19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만큼 확실한 소상공인 관련 정책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부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코로나19까지 경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 바이러스가 계속 발생해 왔고 그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며 “이런 (감염병 등) 사태가 반복됐을 때 국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소상공인 관련 기관과 지자체 등 데이터를 위한 기관 인프라는 이미 충분하다”며 “이를 활용해 정책을 위한 인프라를 확실히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논의 중인 ‘자영업자 손실보상제’ 역시 정확한 데이터가 선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교수는 “지원금을 단순히 나눠주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가진 장기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다만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이익공유제는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데다 근본적인 지속가능성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신 회장은 “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기업이 가치투자한 성과를 균등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존재해왔고 위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취지”라며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이익공유제는 코로나19로 혜택을 본 기업이 힘든 이들을 도우라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시장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기업 경영의 근본 원리와 대치된다”며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미래 환경과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방식의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소상공인 지원책 중 하나로 소상공인 공제조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코로나19로 사회가 격변하는 가운데 소상공인이 금융 측면에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류 실장은 “최근 진행한 소상공인 금융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1금융보다 정책금융을 확대해야 한단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손실보상에 대한 법제화도 필요하지만, 소상공인 자구책 또는 대비책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제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도 “소상공인을 위한 공제를 만들고 자체적인 신용등급도 설정해 소상공인도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면 어떨까 한다”며 “소상공인이 이런 경제위기에서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금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세계적인 선례를 봤을 때 소상공인을 위해 시작한 금융기관도 결국 전략이 바뀌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며 “공제조합과 소상공인 저금리 대출 등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에서 자금을 필요한 사람들에 꾸준히 공급할 수 있는 운영 방안도 면밀히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