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가 이사에게 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상법 개정안에 관해 경고했다.
주주와 이사 간 직접적인 책임 관계가 생기면, 인수합병이나 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기업 친화적 미국 역시 인수합병 1건당 평균 3~5건의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되는데, 소송 사유 대부분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 위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한경협은 '미국 M&A 주주대표소송과 이사충실의무' 보고서를 발간하고 영미법계의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한국 상법에 무리하게 도입할 경우 기업이 입게 될 피해를 점검했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하면, 해당 거래에 있어 이사가 신인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주대표소송이 거의 자동적으로 제기된다.
신인의무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주의 의무', 이사가 자신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충실 의무' 등을 의미한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미국 상장회사 인수합병 거래(1억 달러 이상, 1928건)를 분석한 결과, 매년 인수합병 거래의 71%∼94%가 주주대표소송을 당했다. 기업들은 인수합병 거래 1건당 평균 3~5건의 주주대표소송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통상 인수합병 계획이 발표되면, 일부 주주가 공시 정보 부족이나 중요 사항 누락 등을 이유로 이사 신인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결국 회사는 인수합병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원고 측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일종의 인수합병 거래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미국에서는 '경영판단원칙'을 통해 이사의 책임을 제한 또는 면책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송 과정에서 이사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 상법에도 이사 책임 면제 조항이 있지만, 주주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해서 주주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상장회사에는 적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조항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사의 경영판단에 대한 형법상의 배임죄 적용도 기업인들에게 큰 부담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민법상의 위임계약에 근거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한 우리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체계에 전혀 맞지 않다"며 "주주에게 별다른 이익도 없고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가치 하락의 우려가 큰 만큼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는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