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은 10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899만주(5.76%)를 KCC에 매각하기로 결졍했다고 밝혔다. 매각 대금은 이날 삼성물산 종가인 주당 7만5000원으로 6743억원 규모다. 이에 따라 KCC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5.79%로 늘어나고 삼성물산의 우호지분은 20% 가까이로 늘렸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 지분으로, 그동안 삼성물산은 자사주 매입 여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자사주를 전격 처분함으로써 우호지분을 13.99%에서 19.75%로 늘릴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은 “KCC를 선택한 것은 사업간 시너지와 순환출자를 피하고 합병 시 필요한 주식매수청구권 매입 자금 마련에 있다”며 “우호적 지분 확대를 통한 원활한 합병 진행 및 유동성 확보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합병을 차질없이 마무리해 지속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CC는 앞서 지난 8일 삼성물산 주식 0.2%, 약 230억원 어치를 시장에서 매입했다. KCC는 지분 매입 이후 추가 매입이 없다고 밝혔지만 만일의 경우 KCC가 다시 한 번 백기사로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이 있었다.
KCC는 이번 백기사 역할 외에도 2011년 12월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당시 매각 난항이 예상됐던 삼성카드의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인수한 바 있다. KCC는 제일모직 지분 25.64% 가운데 17%에 해당하는 42만5000주를 7739억원에 매입했다.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과 합병하면서 KCC는 이 회사 지분 2125만주를 보유하게 됐으며 이후 제일모직이 상장할 때 공모가 5만3000원에 750만주를 매각해 약 1241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잔여 지분 10.18%를 보유한 KCC는 제일모직의 2대주주로 있으며 4년째 삼성과 우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KCC가 보유한 지분의 평가차익은 2조원에 가깝다.
재계는 이러한 관계를 볼 때 KCC가 삼성이 믿을 수 있는 투자자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이 확실히 믿고 자사주를 처분할 수 있는 투자자로 KCC 만한 곳이 없었을 것이란 평가다. 여기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 회장 간 친분도 이번 거래를 성사시킨 배경으로 꼽힌다.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로서 사업적 교류뿐만 아니라 인간적 친분관계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 회장의 삼성물산 자사주 취득이 또 한 번의 주식투자 대박으로 이어질지도 관심거리다. 정 회장은 2008년 옛 계열사 만도를 되찾으려는 한라그룹의 백기사로 나선 바 있다. 당시 KCC는 2670억원을 투자해 만도의 2대주주가 됐으며, 만도의 재상장과 지분 처분을 통해 3년간 5140억원가량을 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