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모(45)씨는 회사에서 5일로 권장돼 있는 여름휴가도 작년에는 이틀밖에 쓰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름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데다 부서 자체가 워크홀릭에 빠졌다 할 만큼 구성원들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여름휴가도 짧게 다녀온 것이다.
정부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휴식의 대가로 법적으로 1년에 15일을 연차휴가로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연차휴가란 5인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휴가다. 종업원이 1년 동안 근무한 결과에 따라 발생되는 휴가로서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사업장마다 다르지만 여기에는 여름휴가 5일을 포함하는 업체도 있고 15일 외 여름휴가 5일을 따로 주는 사업장도 있다.
중요한 것은 15일 휴가를 1년 중 다 써야 한다는 것인데, 대한민국 사업장 근로자들 대부분은 보름이란 기간을 다 쉬지 못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컨대 A라는 중소기업은 직원들에게 15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이 중 여름휴가 5일을 제외하면 10일이 남는다. 여기서 급여로 대체되는 일수는 5일이다. 그럼 5일을 1년 중 개인이 필요한 날짜에 써야 하는데 아직까지 국내 기업문화는 연차휴가 즉, ‘쉰다는 것’에 관대하지 않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연차휴가 사용이란 먼 나라 얘기나 다름이 없다.
이 같은 국내 연차휴가 문화 개선을 위해 연차휴가사용촉진제도가 시행 중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해 7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300개 기업 임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차휴가사용촉진제 시행 등 휴가를 적극 권고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61.7% 정도였다.
또한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는 기업은 4개 중 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 중 25%만 연차휴가 사용을 지키고 있고 반대로 75%는 연차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업무과다나 대체인력 부족, 상사 눈치, 연차수당을 받기 위해, 직장 분위기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이처럼 회사 분위기 등은 연차휴가 사용에 잦은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에 기업들도 휴가를 다 쓰면 인력부족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근로시간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하는 반면 근로시간이 비교적 적은 선진국들에 비해 경제적 가치 생산은 떨어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문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본부장은 “장시간 일을 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면서 “연차휴가가 모든 사업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기업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이 휴가제도에 대해 사용할 수 없는 혜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눈치와 업무과중이 주원인으로 안 쓰는 것보다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휴가를 가게 되면 동료들이 힘들어지고, 혹여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기업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 본부장은 또한 근로 및 노동법에 대한 무지도 이 휴가제도 사용 정착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아울러 제도적 문제도 지적했다. OECD 선진국들은 ‘연속휴가제’가 있다. 이 때문에 여름이나 겨울 2~3주간 긴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선진국들은 3교대가 기본이기 때문에 휴가로 생긴 인력 공백은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구해 해결하면 된다. 일본도 5일 연속 휴가가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연속적으로 긴 기간 동안 휴가를 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휴가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정 본부장은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도 조금씩 연차휴가 사용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은 연차휴가를 징검다리 휴일 기간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5)씨는 “연중 징검다리 휴일이 생길 때마다 전사적으로 연차휴가를 사용하고 있다”며 “한번 쉴 때 편안히 쉴 수 있고, 연차를 다 쓸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직원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 사이에선 연말휴가 권장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연말 떠들썩한 종무식이 사라진 대신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연차휴가 소진을 권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11월 1일인 창립기념일 휴무를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로 대체하면서 연말 휴가 분위기를 조성했다. LG전자도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휴가를 사용할 것을 권장해 해외여행 등 여가를 즐긴 직원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