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소유예 처분이면 생큐?…억울함 풀 곳 헌재 밖에 없었다 [기소유예 처분의 함정 ①]

입력 2024-07-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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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4-07-29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CCTV 보고도 제대로 수사 안 한 검찰…헌재 “중대한 수사 미진”

미성년자에 소주 팔았다며 편의점주 추궁…檢, 기소유예 처분
CCTV 속 여성 옷차림 전혀 달라…재수사 요청했지만 ‘불가’ 통보
헌재, 헌법소원 인용 결정…“검찰이 보강수사 안 하고 혐의 인정”

▲   (게티이미지뱅크)
▲ (게티이미지뱅크)

편의점을 운영하는 A 씨는 대답 한 번으로 억울한 피의자가 됐다. 2020년 5월 경찰은 한 여학생과 A 씨의 편의점에 찾아와 소주 2병을 팔았냐고 추궁했다. A 씨가 판매 사실을 부인하자 경찰은 CCTV를 확인했고, 한 여성이 물건을 구매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당시 술에 취해있던 여학생은 영상 속 인물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당황한 A 씨는 항상 퇴근길에 소주를 구매하던 다른 여성과 헷갈렸다며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고, 검찰은 같은 달 말 A 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후 A 씨는 CCTV와 사건 당일 판매 영수증을 교차 확인했다. 비교해 보니 그날 소주 2병을 구매한 손님은 남성이었고, 경찰이 지목한 여성은 해당 여학생과 옷차림이 전혀 달랐다. A 씨는 2020년 6월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검찰은 재수사 불가를 통보했다.

헌재,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처분 취소 인용

A 씨의 억울함을 풀어준 건 헌법재판소였다. 헌재는 지난해 3월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만에 A 씨의 결백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헌재는 △술에 취한 여학생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점 △CCTV 영상 속 여성 손님이 동일인물로 보이지 않는 점 △사건 당일 추궁과 여학생의 진술로 A 씨가 당황해 범행을 자인했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특히 “소주를 판매한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검찰이 관련된 보강수사를 하지 않고 혐의를 인정했다”며 “이러한 검찰의 처분은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증거 판단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투데이DB)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투데이DB)

검찰이 ‘한 번 봐주는’ 처분…“추가 수사 제대로 안 해”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사안이 경미하거나 피의자에게 참작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 처분이다. 즉 재판에 곧바로 넘기는 대신 검찰이 ‘한 번 봐주는’ 것이다. 큰 범죄를 저질렀는데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다면 ‘고마운’ 처사지만, 사실과 전혀 달라 무죄를 주장하는 피의자에겐 이 마저도 ‘억울한’ 처분이다.

기소유예는 무혐의 처분과 구분되는데, 여기서 ‘검찰의 재량권’이 두드러진다. 피의자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하려면 사건을 헌재로 끌고 가야 한다. A 씨처럼 억울한 피의자들은 헌법소원밖에 방법이 없는 셈이다.

2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전국 검찰청의 기소유예 처분은 지난해 16만5856건에 달했다. 2019년 16만8992건에서 2020년 15만8643건 등 최근 5년간 15만~16만 건을 유지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일반 사람은 변호사를 선임해 헌법소원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며 “다만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헌재가 취소 결정을 하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검찰이 제대로 추가 수사를 안 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누명을 쓴 피의자의 억울함과는 별개로 사건이 헌법소원으로 이어지면 사법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관계자는 “기소유예 사건을 헌법소원으로 다투는 것을 감안하면 행정력 낭비이자 검찰의 공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뉴시스)

사건 범죄 일자 미특정‧자의적 판단 등 지적 수두룩

고등학교 교사인 B 씨의 처분도 헌재가 구제한 사례다. B 씨가 수업 중 성적인 발언을 한다는 지적이 SNS상에서 제기되자, 경찰은 관련 학생들을 불러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한 여학생이 “B 씨가 숙제를 안 한 애들의 뱃살을 잡고 꼬집고 비틀었다. 나도 당했고, 수치심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B 씨는 학생들과 신체 접촉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검찰은 2019년 2월 기소유예(아동복지법위반 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B 씨는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는 지난해 7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재는 검찰이 B 씨가 부인함에도 범죄 일자를 특정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목격자의 인적사항을 들었으나 추가 수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 해당 수업날짜에 관련 학생이 결석한 정황 등을 종합하면 B 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봤다.

한 노인이 마트 자율 포장대 위에 놓인 3500원 어치 사과 한 봉지를 무심코 담아왔다가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된 적도 있었다. 헌재는 2021년 6월 이 사건을 충분히 수사하지 않고 ‘순간적인 욕심’에 따라 범행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한 검찰의 처분을 취소했다.

☞용어설명
◇기소유예
=범죄 혐의가 있더라도 범인의 연령·성행·지능·환경·피해자에 대한 관계·범행동기·수단·결과·범죄 후의 정황 등을 고려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 검찰이 재판에 넘기는 대신 '한 번 봐주는 것'인데 이 마저도 억울한 피의자가 기소유예 처분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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