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한진해운 협력사들의 표정은 고단했다. 이날 이야기를 나눈 협력사 여섯 곳의 업종은 운송업, IT, 콘솔, 정비업 등 다양했다. 중소기업청은 지난해 파고를 겪은 해운업과 조선업 중 한진해운에만 약 600여 개의 협력사가 있다고 밝혔다. 오는 3월 한진해운에 대한 법원 결정을 목전에 둔 현재, 협력사들의 문제는 어디까지 해결됐을까.
이날 만난 왕윤식 금강물류 대표는 20년 이상 포워딩과 육ㆍ해상 운송업을 해온 업계 베테랑이다. 왕 대표는 “우리 회사는 이번 한진해운 사태로 1000개 컨테이너, 대략 20만 달러(2억3500만 원) 규모의 피해가 있었다”며 “직접적인 피해가 그렇고 무형의 피해까지 생각하면 더 커진다”고 입을 열었다.
신수정 에이비비코리아 이사도 자사가 한진사태로 미수금을 포함 약 10억 원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진 같은 대기업에 이런 사태가 발생하리란 예상 못 했기에 미수금에 대한 사전 청구 계획을 갖고 있지 못했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며 “정부에서는 저희보단 미리 알 수 있었을 텐데 사전에 위험 신호 등을 알려줬으면 대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며 아쉬움을 밝혔다.
이날 이야기를 나눈 협력사들은 10억 원 규모의 손실을 본 에이비비코리아를 제외하고는 한진 사태로 인한 손실을 대부분 2억~3억 원 선이라고 밝혔다. ‘비상사태’는 지난달을 기준으로 대부분 정리돼 가는 추세라고 했다. 이 과정서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었고, 대부분 자체적인 대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협력사들은 한진뿐만 아니라 여러 국내ㆍ해외 선사와도 거래를 진행했기 때문에 한진의 빈자리는 이들로 비교적 신속히 메워지고 있었다.
이준우 유니트란스 본부장은 “12월 중순경까지 사태 해결에 집중했다. 그 이후 추가 비용 처리 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왕 대표는 “한진으로 인해 야기된 30% 정도 상승한 물류비용은 이제 15%포인트 상승한 선에서 안정화되는 추세”라고 업황을 설명했다.
거래량의 30%을 한진해운을 이용했다는 모락스콘솔의 관계자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한진도 지급할 수 없고 적하보험에서도 면책사유”라면서 “결국 현지의 파트너와 2억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분담해 묶여 있던 컨테이너를 반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급한 불을 끈 것이지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한진해운에 미들웨어를 제공하던 오라클사의 한국 총판 유클릭 정재형 상무는 “다행히 오라클이 현재 1년분 청구액 중 9개월분에 대해서는 수금 유예를 시켜놨지만 원칙대로 수금에 들어오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왕 대표는 “한진해운이 도산한 후 이제 머스크라인을 이용하는데, 초반에 운임료가 30%나 올라 고객사와 관계가 껄끄러워졌다”고 말했다. “만약 국내 선사에서 한진해운이 하던 사업을 인수하게 되면 업주가 바뀌더라도 저희가 협력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는데, 외국 선사가 가져가면 한국 사업에 문제가 발생하고 고용된 인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신 이사의 지적도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개시된 직후 한진해운 협력사들이 직면한 문제를 돕고자 일련의 금융 지원책을 내놨다. 추경 예산을 재원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정책자금 4000억 원, 지역신용보증기금을 통한 특례보증이 1조 원 규모로 공급됐다. 이 중 현재까지 집행된 건 정책자금 대출 143억 원(48건), 특례보증은 328억 원(112건) 규모에 불과하다.
여섯 협력사들 중에서도 정책자금을 이용했다고 답한 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다. 왕 대표는 “다른 기업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별다른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았다”면서 “신보나 기보 등에서 담보를 전제로 금융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업계 모두 담보 여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지원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알아보긴 했는데 피해액은 2억 원 정도인 반면, 자금력 있는 회사로 분류돼 해당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정부에서 도와줄수 있는 부분은 자금 지원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 외의 피해는 기업 간의 계약건이기 때문에 결국 자체적으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