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콘텐츠산업의 선두주자이자 미래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게임산업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2014년 국내 게임산업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했다. 굵직한 게임업체들이 외국 게임기업에 흡수되어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위축의 이유가 외부 경쟁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 규제 때문이라는 점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이투데이에서는 총 3회에 걸쳐 한국 게임산업을 진단하고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시리즈를 마련했다.
<글 싣는 순서>
①‘게임 종주국’은 이제 허상
② 확률형 아이템 규제, 제2 셧다운제
③ 정부 게임산업 진흥책 급하다
“대한민국이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란 말도 이젠 옛말입니다. 보시다시피 지금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대부분이 외국산 게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도권에서 10년째 PC방을 운영하는 유재영(가명) 씨가 던진 말이다. 광복절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오후 3시에 찾은 PC방은 찜통 더위로 한산하던 거리와 달리 외국산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이곳 PC방의 컴퓨터 사용 현황을 살펴보니 117대의 모든 컴퓨터에는 빈 자리 없이 전체가 로그인이 돼 게임에 열중하는 유저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리 나기를 기다리면서 PC방 전체를 둘러보니 모니터에서는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전투가 한창인 곳이 많았다. 소위 요즘 PC방에서 뜬 미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오버워치’였다.
유 씨는 “10년 전에는 리니지를 비롯해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등 국내 게임들이 PC방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10명 중 6명이 외국산 게임을 찾을 정도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중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 기업들의 공습이다. 중국 게임기업들이 M&A(인수·합병)를 통해 기술력과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다.
◇국내 시장 점령한 외국산 게임 = 외국산 게임이 국내 PC방을 점령하고 있다. 16일 국내 PC온라인게임 통계 사이트인 게임트릭스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오버워치’가 33.04%로 1위,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는 23.99%로 2위를 차지했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3, 기타 외산 게임의 점유율을 모두 합치면 국내 PC방에서 약 60%가 외국산 게임이다.
이 같은 수치는 PC방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카운터에 문의해 살펴본 결과 PC방 사용자 중 60% 이상이 오버워치와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PC방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진원(18) 군은 “이 게임, 저 게임 다 하는데 PC방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외국산 게임을 즐기는 편”이라며 “집에서는 가끔씩 던전앤파이터, 피파온라인3 같은 국산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게임을 즐기던 이수지(23) 씨도 거들었다. 이 씨는 “자신에게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국산 게임을 못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외국산 게임이 그래픽이나 게임성 면에서 더 뛰어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규제에 발목 잡힌 국산 게임 개발 = 국내 한 중소 게임사에서 게임 개발을 담당하는 A 씨는 정부의 규제 테두리로 인해 자율성이 억압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게임을 가장 잘 개발할 수 있는 곳은 한국 게임 개발사”라며 “그렇지만 개발 단계부터 여러 규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자율성이 크게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국산 게임의 경우 장르 다양화로 유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게임 개발사의 B 씨는 “외국산 게임들은 장르의 다양화로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오버워치의 경우 FPS장르와 AOS장르를 결합한 것이고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에도 전략에 컨트롤을 용이하게 해 큰 흥행을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셧다운제와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각종 게임 관련 규제도 게임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국산 게임들은 다양한 규제에 막혀 위축되고 있는 것이 몇 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며 “국내에서 게임산업이 날개를 펴려면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 더 큰 위협은 중국기업 = 중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는 중국 게임기업들이다. 중국 IT기업인 텐센트는 최근 핀란드 게임업체 슈퍼셀을 86억 달러(약 9조5000억 원)에 인수하며 글로벌 1위 게임기업으로 도약했다. 자금력을 갖춘 다른 중국 게임기업들도 개발 능력을 갖춘 기업들을 M&A하고 있다. 이 중 국내 게임기업들은 중국 기업들의 대표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온라인 교육 서비스업체인 아이넷스쿨을 인수한 중국 룽투게임즈는 룽투코리아로 사명을 바꿔 국내 게임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게임사 아워펌은 웹젠 지분 19.24%를 확보해 2대주주에 올랐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얼마 뒤엔 국내 게임기업들은 간판을 내리고 외국 게임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3월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중국 M&A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는 셧다운제 등 규제가 중국 자본이 국내 게임업계에 침투하는 빌미를 제공한 규제로 해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