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비리에 이어 국정농단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심 재판에서 그 사명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고 해도 집행유예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 측 변호인은 "큰 규모의 투자는 최종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한데 최종 책임자가 없으니 파격적인 해외 투자 제안을 받아도 눈치만 보고 있다. 투자가 안 되니 신규채용도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신 회장도 "그룹이 내수시장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고전 중이고,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사드 때문에 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신 회장의 2심 재판부는 1심 실형 선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제3자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신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그를 풀어줬다.
4300억 원대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해달라며 보석을 청구했고, 재판부에 "잘못된 건 시인하고 바로잡은 후 직원들을 다시 일깨워 제자리를 잡아주면 이번에 한 번 혼났기 때문에 부영이 다시 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회장직에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은 "역사상 재벌 오너들이 구속됐을 때 기업은 쓰러진 적 없다"며 "이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 경영에 대한 사고"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회장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다.
기업인들의 간곡한 변론을 빌리자면, 그들만큼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존재도 없다.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이들이 기업을 위기에 빠뜨리고 뒤늦게 사명감을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한 꼴이다. 한 마디로 괘씸하다.
신 회장의 석방으로 이제 구속 수감된 유력 재벌 총수는 한 사람도 없다. 기업과 나라 경제를 위해 제자리로 가야 한다던 그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것. 기업은 얼마나 살아나고 경제는 또 얼마나 활기를 찾을까. 그것이 그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