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경영진들이 재무상태 악화로 물러나게 될 상황에서 고액의 퇴직금을 받아갈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든 것은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특히 이러한 퇴직금지급 규정이 주주총회를 통과했더라도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행담도개발의 전직 임원 정모 씨와 강모 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상법이 정관 또는 주주총회 결의로 이사의 보수를 정하도록 한 것은 이사들이 고용계약과 관련해 사익을 도모하는 폐해를 방지함으로써 주주와 회사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퇴직을 앞둔 이사가 회사로부터 최대한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직무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에 비해 합리적 수준을 현저히 벗어나는 보수 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 주주총회 결의가 성립되도록 했다면, 회사재산을 부당히 유출하는 배임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로공사는 행담도 해수면 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IMF 외환위기로 인해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이 사업이 민간사업으로 진행되면서 행담도개발이 설립됐고, 정 씨는 2003년~2010년까지, 강 씨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이사로 재직했다.
휴게소 임대 이외에는 별다른 수익사업이 없던 행담도개발은 2008년 73억원 정도의 누적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매출액 규모에 비해 임원 급여 비중이 높은 것이 손실의 주된 원인이었다. 당시 행담도개발의 대주주였던 회사는 무리하게 회사채를 발행했고, 원리금 상환 가능성이 거의 없어 정 씨와 강 씨를 포함한 경영진은 모두 해임될 상황에 놓였다.
행담도개발의 대표이사 등은 퇴직금 지급규정을 제정해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대주주를 통해 이 규정을 주주총회에서 의결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대표이사는 종전의 5배, 이사는 종전의 3배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임직원 14명 중 10명이 새로운 연봉을 계약했는데, 인상 폭은 6.8~66.7%였다. 정 씨는 1억4500만원이던 연봉이 1억8000만원으로, 강 씨는 4800만원에서 8000만으로 올랐다. 특히 대표이사의 경우 퇴직금 수령액은 10억원에 달했다.
이후 행담도개발은 B사로 넘어갔고, B사는 정 씨와 강 씨의 해임을 요구하는 임시주총을 열고 형사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정 씨 등은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불법 행위로 사임하게 됐으니 잔여 임기를 채우면 받을 수 있었던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2010년 새로 체결된 연봉 인상 계약이 무효라고 판단하고 강 씨에 대한 임금 미지급분 1100만원만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