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3년 계획이 대통령의 깨알 같은 첨삭과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간의 소통 부족에 두 차례에 걸쳐 다른 내용이 배포되는 혼선이 빚어진 탓이다. 최종 담화문과 관련, 참고자료엔 기존에 발표한 보도자료 초안 상의 과제 100개 중 44개나 제외됐다. 덕분에(?) 확정되지 않은 내용을 보도한 언론은 예기치 않은 ‘오보’ 사태에 직면해야 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내놓아야 할 주무부처인 기재부가 손발이 잘린 채 청와대의 ‘답’만 기다리다 발생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빨간펜에 휘둘려 부처와 협의조차 되지 않은 미완의 설익은 대책을 내놓은 기재부는 경제컨트롤 타워로서의 위상을 잃게 됐다. 현오석 부총리 역시 리더십 부재 논란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기재부는 당초 지난 19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요약본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자료에 담긴 15대 핵심과제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고, 100대 실행과제가 명시된 300쪽 분량의 상세본은 21일 추가로 배포한 후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경 브리핑은 실무적인 작업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취소됐고, 상세본 배포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의 담화가 있는 25일 아침에서야 부처 장관들의 브리핑 없이 상세본도 아닌 담화 내용과 관련된 참고 자료(주요 대책 및 우리경제 모습)만 기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더 큰 문제는 참고자료에선 기존 초안의 실행과제 100개 중 절반에 가까운 44개가 빠졌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낙하산 방지안, 보조금 개혁안, 병행수입 활성화 방안, 종교인 과세, 정규직 보호,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M&A(인수합병) 활성화 방안, 코스닥 시장과 거래소 분리안, 사교육비 경감 방안 등 이슈가 될 만하거나 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주는 사안들이 주로 제외됐다.
더욱이 15대 핵심과제는 담화문에서 9+1과제로 변경됐다. 세부 과제 숫자도 적시되지 않았다. 이미 요약본을 토대로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철주 기재부 경제정책 국장은 이날 화상으로 긴급 브리핑을 열어 “100개 항목이 너무 복잡하고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다는 언론 등의 지적이 있어 청와대, 다른 부처 등과 협의해 솎아내는 작업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담화문에 있는 것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추진할 사항이며 이 계획 과제에서 빠진 것들은 국정과제 또는 부처의 일반 정책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급조된 설명도 덧붙였다.
기재부는 초안을 내놓기에 앞서 청와대와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을 거쳤다고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 대책들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일일이 수정 지시를 내려 수차례 첨삭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전면적으로 내용이 바뀌게 돼 최종본은 담화 발표 15분 전에야 완성됐다는 후문이다. 기재부가 밤낮없이 준비한 300여쪽 분량의 상세 설명본은 한순간에 휴지통으로 직행했고 경제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도 함께 실종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