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인생굴곡
최근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장성택 전 부위원장의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장성택은 1971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를 만났다. 이후 장성택은 김경희와의 자유연애를 통해 이듬해 결혼에 골인,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장성택은 운신의 폭을 넓히면서 권력세계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음주가무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강선제강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노동당으로 복귀한 장성택은 1985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이렇게 한창 잘나가던 2004년 돌연 '권력욕에 의한 종파행위'라는 이유로 숙청 당했다.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해 파벌을 만들었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그러나 당시 국방위원장이었던 김정일의 견제가 진짜 이유였다는 분석이 더 많다.
장성택의 오뚝이 신화는 계속됐다. 3년 만인 2007년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실질적인 권력 2인자로 부상했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정적으로 장성택은 김정은 시대 개막과 함께 호시절에 마침표를 찍었다. 숙청과 부활을 반복하던 장성택은 돈을 모아 정변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이달 체포된 지 나흘 만에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당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일각에서는 장성택이 과거에도 숙청당했다가 다시 복귀해 승승장구하는 등 특유의 끈기와 저력을 보여왔던 만큼 이번에도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숙청이 처형으로까지 이어져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북한의 3세 세습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