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깨는 '이중잣대' 이제 그만

입력 2010-10-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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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공직자 도덕성 불신사회 만들어

#. 지난 2002년 정부는 단위 학교별로 관리하던 학교종합정보관리서버(CS)를 통합하기 위해 52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를 구축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통합서버를 운영할 경우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며 전교조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제기됐고, 이를 조정하는데 수개월이 소요됐다. 협의 결과 교무·학사와 보건, 입학·진학의 3개 쟁점 부문의 서버를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결국 520억원의 추가 예산을 들여 이미 구축된 시스템을 변경해야 했다.

#. 지난 2008년 여름 시청앞 광장과 광화문이 붉은 촛불로 뒤덮였다. 미국발(發) 광우병 파동에 놀란 적잖은 국민은 졸속으로 이뤄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정부와 국민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이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은 어느 정도일까. 당시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소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열린 100여 일 동안 무려 3조7513억원 규모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이는 2007년 GDP의 0.4%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대한민국의 올해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3년만에 2만달러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는 지난 1980년대 말 세계 일류국가였던 미국과 일본 스웨덴 등 9개국이 막 넘어섰던 수준이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선진국 수준의 국민소득 잣대가 3만~4만달러로 상향 조정됐지만 명목상으로 보면 그때 기준으로 대한민국도 선진국에 한발 더 가까워 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신(不信)으로 만연한 2010년 대한민국의 현 주소는 선진국에 걸맞는 국격(國格)을 갖췄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은 혈연-지연-학연 등을 중시하는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정부-기업-근로자 등 각 경제 주체들의 불굴의 의지에 힘입어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내는 등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선진국이 100여년에 걸쳐 일궈낸 경제 성과를 불과 한 세대만에 압축시켜 이루다 보니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을 갖출 시간적 여유는 갖지 못했다. 양적 성장은 이뤘지만 그에 걸맞는 정신적·문화적 성숙은 지체된 것이다. 보여지는 그대로 ‘덩치’만 커진 지적장애인 ‘지진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불신풍조가 지배하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 사회는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없다. 소통의 정치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이투데이가 ‘超一流 국가의 조건’ 가운데 ‘신뢰사회의 구축’을 첫번째로 제언(提言)한 것은 사회에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공정한 사회가 이뤄지고 경제가 바로 서며, 소통하는 정치가 가능해 불필요한 기회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선진국의 제도와 규범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 여건을 감안해 제대로 된 토착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급하게 이식된 측면이 있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정부 아래서 법제도의 운용이 정권의 편의에 따라 운용됐던 경험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법규범 및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한국사회 불신풍조의 원인을 짚었다.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 등의 사회적 자본은 축적이 가능하고 다른 생산요소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일종의 무형자본으로 분류된다. 한국 사회는 낮은 사회적 자본이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예컨대 취약한 사회적 자본으로 인해 잦은 노사갈등과 복잡한 대출규제, 높은 보증비용 등 경제구조의 고비용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정책비용을 증가시켜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가져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9월 조사한 ‘한국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한 29개국 중 22위로 하위권이다. 특히 사회적 자본 구성 요소인 신뢰와 사회규범, 사회구조 분야의 점수가 선진국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신뢰의 경우 일반적 신뢰도와 경찰에 대한 신뢰, 금융시장 신뢰, 정부의 소유권 보호의 항목 등에서 취약했으며 신뢰지수는 OECD 국가 중 24위를 차지해 사회규범·사회구조(22위), 네트워크(13위) 보다 낮았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의 2005년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30.2%만이 ‘타인을 믿는다’고 응답, 선진국인 스웨덴(68.0%)은 물론 중국(52.3%)이나 베트남(52.1%)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입법기관인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10.1%에 불과, OECD 평균 38.3%를 크게 밑돌았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28.8%(OECD 평균 34.6%), 종교는 47.0%(52.1%)로 조사돼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어떠한지를 짐작케 했다.

신뢰 부족은 국민은 물론 정부와 기업 등 구성원 전반의 피로도와 정신적 스트레스 강도를 높인다. 정부 정책을 믿지 못하고 무조건 반대하는 풍조를 만연시킨다. 낮은 법질서 준수의식은 불법이 이득이 되고, 법을 지키면 바보라는 후진국형 사회 분위기를 형성시킨다. 또한 ‘연줄’로 대표되는 한국의 폐쇄적 네트워크는 국가나 사회 단위에서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는 분열을 초래한다.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고 계약이 보호되면 타인과 협력하는데 드는 위험 비용이 감소해 사회의 신뢰가 높아지고, 이해집단 간에 단절된 네트워크를 국가적 차원에서 통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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