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출제 오류가 인정되면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 대한 교육계 불신이 커지고 있다. 수능 출제 오류는 이번이 7번째이고 총 9문항이 번복됐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법원 판결을 무겁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서 사퇴의사를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이날 오후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 결정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문제에서 제시한 조건을 사용해 동물 집단의 개체 수를 계산할 경우 특정 유전자형의 개체 수가 음수(-)로 나타난다”며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일 수 없어 이 문제에는 주어진 조건을 충족하는 집단 Ⅰ·Ⅱ가 존재하지 않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판단했다.
강 원장은 판결 후 브리핑을 열어 “수험생과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이번 일의 책임을 절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평가원은 문항 오류 지적이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지난달 29일 “문항의 특성상 정답을 고를 수 있다”며 ‘이상 없음’ 판단을 내렸다. 오류는 있지만 정답을 고르는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법원이 출제 오류를 인정하고 평가원이 전원 정답 처리하면서 수능 출제 오류는 이번이 7번째를 기록하게 됐다. 과거 수능에서 ‘복수 정답’ 또는 ‘정답 없음’이 인정된 것은 2004학년도, 2008학년도, 2010학년도, 2014학년도, 2015학년도, 2017학년도이다. 이때마다 평가원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올해 수능도 출제 오류 논란으로 신뢰도에 금이갔다 .
수험생 소송 대리인인 김정선 일원법률 변호사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관련 책임자들의 처벌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평가원은 문제출제, 검토, 채점, 이의신청 및 처리까지 모두 내부에서 비공개로 진행하며 진실을 외면했다"면서 "힘없는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본인들 실수를 덮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가원과 관련 학회 전문가들의 잘못된 내부적 이해관계와 비상식적 자문, 자문에 대한 불공정한 해석 등은 앞으로 철저히 조사해야 할 감사 대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입시 업계에서는 문제 검수 과정과 이의제기 처리 방식에 따른 시스템 점검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학탐구 영역에서 유독 출제오류가 빈번한 데에 대해 문제 검수 등 시스템 점검 필요성을 제기했다.
A 입시 학원 관계자는 “이과계열 상위권 학생들에게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과학이라는 과목 특성이 뭉쳐져 일어나는 문제”라며 “과학탐구 영역은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돼도 적극적인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가집단으로부터 공론화는 물론 적극적 의견개진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김동영 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장은 "수능 이의신청 심의제도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