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은 전날 화상으로 진행된 ‘세계개발자대회 2020(WWDC 2020)’에서 올해 말부터 자사의 데스크톱·노트북 맥에 자체 설계한 시스템온칩(SoC) ‘애플 실리콘’을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맥용 반도체 칩을 공급해온 인텔과의 15년 협력관계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외주 부품을 자체 설계한 부품으로 전환해 나간다는 포괄적 전략에 따른 것이다. 기술 전문 애널리스트인 웨인 램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애플 아이폰의 핵심 부품 중 42%가 자체 제작한 것이다. 이 비율은 5년 전 8%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며, 앞으로 모뎀 칩과 센서도 직접 만들어 내제화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비용 절감은 물론 신제품 출시 일정도 자체 조정이 가능해진다. 애널리스트들은 자체 개발한 반도체 칩을 탑재하면 맥의 대당 비용이 75~150달러가량 낮아질 것으로 봤다. 그만큼 고객과 주주에게 돌아갈 몫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전략은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생전에 내걸었던 ‘핵심 부품 기술을 보유하면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애플은 자체 개발한 반도체와 센서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의 배터리 성능 및 기능 측면에서 경쟁사를 크게 앞지를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반 부품을 사용하는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WSJ는 평가했다.
전직 애플 엔지니어들에 따르면 애플은 오랫동안 외부 공급업체에 의지하면서 핵심 부품 설계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쌓아왔다. 동시에 거래처에는 애플 독자 기능을 부품에 추가하도록 요구했다. 그 한편에서는 자사 반도체 칩 제조를 맡길, 믿을만한 반도체 파운드리로서 대만 TSMC를 골랐다. TSMC는 10년간 애플용 반도체칩을 생산해왔다.
애플이 이처럼 은밀하게 진행해 온 반도체 칩 내제화로 반도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당장 인텔은 노트북 PC용 반도체 칩 매출에서 20억 달러를 잃게 됐다.
이뿐이 아니다. 애플이 자체 반도체 칩 설계를 확대하면서 경쟁사 주가는 최근 급락하고 있으며, 일부 공급 업체는 아예 사업을 접었다. WSJ에 따르면 애플이 반도체 내제화 계획을 밝히자 영국 이매지네이션 주가는 70% 폭락했다. 또 애플이 전력제어기술 개발에 의욕을 보이자 유럽 다이아로그세미컨덕터는 애플과 경쟁을 피하려 관련 사업을 애플에 팔았다. 애플은 지난 10년간 6개 이상의 반도체 회사를 인수했다. 여기에는 작년에 10억 달러에 산 인텔의 모뎀 사업도 포함된다.
애플의 반도체 부문은 10년 새 엔지니어가 수천 명 규모로 늘었다. 애플이 공급망 하나를 끊을 때마다 비용은 절감되며, 칩 내제화 비용을 정당화 할 수 있다.
카버 미드 캘리포니아공과대학(CIT) 교수는 “성능 향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업계의 자연스러운 추세”라면서도 “애플의 공급업체에는 그 파급효과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