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6일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75%로 0.50%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국내 기준금리가 제로(0)%대 영역에 들어선 건 사상 처음이다. 저물가·저성장으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예상 밖 충격파가 한은의 정책 기조를 단번에 바꾼 것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기준금리를 0.00~0.25%로 1%포인트 인하하며 5년 만에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다. 연준은 지난 3일에도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하, 불과 2주 사이 두 차례의 ‘빅 컷(큰 폭의 금리인하)’을 단행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약 7년간의 제로금리 시대로 다시 회귀했다. 팬데믹 공포가 ‘제로금리 시대’를 대폭 앞당긴 셈이다.
일본은행(BOJ)도 예정보다 이틀 앞당겨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현재 연간 6조 엔인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목표를 12조 엔(약 139조 원)으로 두 배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현재 마이너스(-) 0.1%인 기준금리는 동결했다.
주요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의 충격파를 막으려 이처럼 파격적인 처방전을 내놨지만,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는 또 실패했다. 16일 코스피지수는 장 초반 등락을 거듭하다 결국 전 거래일 대비 3.19% 떨어진 1714.86로 마감했고, 코스닥도 3.72% 내린 504.51로 종료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46% 하락한 1만7002.04로 3년 4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3.40% 떨어진 2789.25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 다우지수 선물은 1000포인트 이상 하락했고, S&P500 선물 역시 100포인트 넘게 빠졌다.
장 초반에는 중앙은행들의 공격적인 부양책에 힘입어 오름세를 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이내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이 너무 성급하게 실탄을 소진해버린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시장을 지배했다.
마이클 오루크 존스트레이딩 수석전략가는 “연준이 실탄을 다 써버렸다”며 “문제는 시장의 관점에서 사태가 분명히 해결됐느냐는 것인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며 “정례회의(17~18일)까지 기다리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버트 패브릭 슬레이트스톤웰스 수석 투자전략가 역시 “연준은 갖고 있던 무기를 모두 꺼내들었다”며 “이것이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코로나19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진전은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만족스럽다는 반응은 그동안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주문하며 연준과 대립각을 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연준의 금리 인하는 큰 걸음이며 그들이 해내서 매우 행복하다”며 “연준을 축하하고 싶다. 시장은 아주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블리클리 어드바이저리 그룹의 피터 부크바 최고투자책임자(CIO) 역시 “하늘에서 아무리 많은 돈이 쏟아진다고 해도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는 없다”며 “오직 시간과 약만이 고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