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 판매 부진에 대만 기업들의 지난달 매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하면서 글로벌 IT 경기가 내년 불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대만 주요 IT 19개사의 11월 매출 총액은 전년 동월 대비 7.8% 증가한 1조3091억 대만달러(약 48조 원)를 기록했다.
매출이 늘어났지만 증가율은 10월보다 6%포인트 가까이 떨어졌으며 과반을 넘는 11개사 매출 감소를 보고했다. 스마트폰 수요 둔화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면서 대만 제품을 공급받는 IT 기업들의 비용절감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신문은 풀이했다.
대만은 미국 애플과 중국 화웨이 등 세계 기술 대기업의 위탁생산이나 부품 공급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밀집해있다. 이에 매월 발표되는 대만 기업의 매출 실적은 향후 IT 경기를 점치는 선행 지표로서 전 세계 투자자가 주목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 조립을 담당하는 세계 최대 위탁생산업체 훙하이정밀공업과 경쟁사인 페가트론의 실적은 괜찮았다.
홍하이 매출은 전년보다 5.5% 늘었다. 애플 아이폰 조립 수요 이외 중국 고객사 스마트폰과 서버 생산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힘입었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페가트론 매출은 40% 이상 급증했다. 이 업체는 아이폰 신모델 중에서도 LCD 패널을 탑재했으며 판매가 부진한 것으로 알려진 ‘아이폰XR’ 생산을 주로 담당해 우려를 자아냈으나 실제로는 달랐다. 다만 업계에서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아이폰8’ 인기가 다시 높아진 영향이라고 평가했다.
아이폰 부진 영향은 스마트폰 관련 부품업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케이스를 생산하는 캐처테크놀로지(Catcher Technology) 매출은 전년보다 10% 줄었으며 10월에 비해서는 25%나 감소했다. 아이폰 신제품 출시 직후인 11월 이 기업 매출이 줄어든 것은 최근 5년간 한 번도 없었다고 신문은 강조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용 광학 렌즈 부문 세계 최대 기업인 라간정밀은 매출이 약 30% 감소했다. 라간 매출에서 애플 비중은 약 40%에 이르고 50% 이상은 중국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다.
대만 유안타증권의 투징팅 투자고문은 “세계적인 가격 상승으로 스마트폰 교체주기의 맥이 풀린 상태”라며 “올해와 내년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춤한 아이폰 판매와 더불어 중국 소비둔화도 걸림돌이다. 데이터 임시저장에 사용하는 반도체 메모리 DRAM 세계 4위 생산업체 난야테크놀로지는 지난달 매출이 6% 줄었다. 매출 감소는 27개월 만에 처음이다. 난야는 TV 등 가전제품용 시장을 개척해 성장세를 유지했으나 규모가 큰 중국 가전시장의 부진으로 제품 단가 하락에 직면했다.
미·중 무역전쟁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다. 그러나 대만의 한 위탁생산업체 임원은 “앞으로가 문제”라며 “기업은 소비 불확실성을 싫어해 재고를 줄이고 있으며 조립과 부품을 담당하는 업체들도 주문 감소에 대비해 설비투자와 인력 확충을 억제하는 부정적 주기가 시작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지난 5일 화웨이의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긴장감이 돌았다. 화웨이는 TSMC에 있어서 애플을 잇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여기는 고객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