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온라인이라는 가상세계에서만 통용되고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재화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인터넷 게임 아이템들은 가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뿐 실물도 없고 실제 가치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아이템에 대한 거래가 엄연히 이루어지고 있고 아이템 거래소도 실제 운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가상세계에만 존재한다고 해서 ‘희귀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가상화폐가 제도권에 들어온다면 온라인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웹상에서 간단히 유통되므로 국내외 자금거래에서 수수료나 환전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등 신용카드가 화폐를 대신하듯 가상화폐도 실물화폐처럼 사용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올해 상반기 가상화폐 거래가 과열 투기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가상화폐가 폭락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고(아마도 과열된 가상화폐 거래가 진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겠지만),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를 도박죄로 처벌하고 가상화폐거래소의 폐쇄를 추진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수장이 ‘내기’ 운운하는 것도 부적절하지만, 법무부 장관의 발언처럼 가상화폐 거래를 도박으로 처벌한다면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 거래도 도박이나 다름없고, 실물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가상화폐를 도박으로 취급한다면 옵션시장이나 파생상품시장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된다.
경제부처 입장에서는 ‘실물화폐’를 전제로 국가 경제 정책을 입안하기 때문에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국가가 통제할 수도 없는 가상화폐가 본격적인 지급수단이 된다면, 중앙은행의 금리 조정이나 통화량 조절에 따른 거시경제 이론은 발 디딜 틈이 없어지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또 금융 관료들 입장에서는 가상화폐가 본격적인 지불수단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가상화폐가 실물화폐를 대체할 경우 어떤 경제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노자의 ‘도덕경’ 제1장은 이런 문구로 시작된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라고 쓰여 있지만, 한글로는 가상주식(virtual stock) 또는 쿠폰(invisible coupon)과 같이 화폐라는 느낌이 안 들도록 이름을 붙였다면 금융당국의 접근이 과거보다는 다소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진척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까지 가상화폐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처과정이 어찌 되었든, 가상화폐는 이미 실재하고 있고, 글로벌 유통되고 있으며, ICO 등 다양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규제와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존재와 가치를 현실로 받아들여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은 실물화폐나 중앙은행만을 염두에 두고 기존 거시경제 이론만을 고집하면서 가상화폐를 무시하거나 금전 세탁 등 단점만을 나열할 것이 아니라, 전향적인 자세로 가상화폐와 관련된 제도나 경제에 미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법무부를 비롯한 법조인들은 가상화폐의 특징을 반영한 법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이고 규제 일변도의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상화폐와 관련해서는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하고 새로운 길을 주도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응변창신(應變創新)의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