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는 최근 전설의 검객 ‘쾌걸 조로’나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캐릭터 ‘삐에로’ 분장을 하고 채무자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처럼 거리에 출몰하는 조로와 삐에로들이 스페인 경제를 대변하고 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빌려간 돈을 받아내는 일은 어느 나라에서든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스페인에서 빚을 받아내는 일은 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여겨져 왔다. 수십 년 동안 스페인 사람들이 채무자들에게 굴욕을 주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도 이 때문이다. 수도승이나 투우사처럼 특이한 차림을 한 누군가가 서류 가방을 들고 어떤 사람을 쫓아다닌다면 스페인 사람들은 그를 빚쟁이로 간주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로와 삐에로 분장을 하고 전문적으로 채무자들을 찾아다니는 추심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스페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민간 영역의 부채 수준은 아직도 높다. 스페인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스페인 기업 중 71%는 채무 상환 일자 만료일까지 빚을 청산하지 못했다.
조로나 삐에로 분장을 해서 빚을 독촉하는 업체들이 돈을 회수하는 비율은 20~60%다. 효과가 있기 때문에 특이한 분장을 무기로 한 추심 시장은 커지고 있다. 1994년 문을 연 ‘엘 조로 코브로 데 모로소스’는 조로 분장을 하고 떼인 돈을 받아주는 업체다. 최근 이 회사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 계열사를 설립했다. 이 업체는 조로 복장이 아닌 바스크 전통 의상을 입고 채무자들을 쫓아다닌다. ‘컬렉션의 수도원’이라는 또 다른 업체는 마드리드에 있는 회사로 3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 직원들은 수도승 복장을 하고 빚 독촉을 하러 다닌다.
스페인에서 추심업체들이 기승을 부리자 반대로 채무자들을 변호하기 위한 법률회사도 전문적으로 생겨났다. 파벌로 카마초 변호사는 조로 분장을 하고 채권을 받아내러 다니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카마초 변호사는 “그들의 유일한 사업 목적은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추심 업체 직원들은 자신들의 의상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마드리드에 추심 업체 사무실을 둔 디 에고 대표는 “우리는 단순한 코스튬을 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것은 유니폼이다”라며 “의사나 경찰관이 제복을 입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채무자에게 망신을 주는 행위는 실제 영국에서는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 스페인에 있는 추심 업체는 영국에 진출하고자 전설적인 사설탐정 셜록 홈즈 옷을 입고 채무자를 따라다니는 사업 아이템을 고안했다. 그런데 영국 법원은 이 사업체의 행위가 5년 징역형에 처할 만한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