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 자회사인 미국 4위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와 경쟁사 T-모바일US의 합병 추진이 사실상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대신 스프린트는 최근 모바일 사업 진출을 선언한 케이블 TV 대기업들과의 제휴로 방향을 바꿨다.
스프린트는 T-모바일과의 합병 논의를 보류하고 미국 케이블 TV 양대 산맥인 차터커뮤니케이션스, 컴캐스트와 제휴 협상에 들어갔다고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스프린트는 7월 말까지 2개월간 이들 케이블 업체와 배타적 협상을 벌인다. 스프린트가 이동통신 회선을 좋은 조건으로 2개사에 제공하는 대신 케이블 업체는 통신망 정비 자금을 대는 것이 논의의 중심에 있다.
차터와 컴캐스트는 이미 미국 1위 이통사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스와 통신망 사용 계약을 맺었지만 스프린트와 더 나은 조건에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더 나아가 두 회사가 스프린트를 공동 인수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스프린트는 시가총액이 320억 달러(약 36조3968억 원)이며, 부채 규모는 326억 달러에 달한다.
차터의 최대 주주인 리버티브로드밴드의 존 말론 회장은 지난해 브라이언 로버츠 컴캐스트 최고경영자(CEO)에게 스프린트와 같은 이통사를 공동 인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여전히 로버츠 CEO는 인수 대신 통신망 확보 계약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사 영역이 점점 줄어들자 케이블 업체는 이통 서비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편 스프린트 등 이통사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어 이런 부담을 더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아울러 스프린트와 T-모바일은 광대한 유선 네트워크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케이블 업체와 제휴하면 케이블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무선을 결합해 5세대(5G) 이통망 구축에 좀 더 유리해질 수 있다.
일부 소식통은 스프린트와 케이블 TV 거물들과의 제휴가 이뤄지면 T-모바일 간의 후속 합병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T-모바일 모회사인 독일 도이체텔레콤은 최근 스프린트와의 합병을 긍정적으로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도이체텔레콤은 합병으로 새롭게 탄생할 회사 지배지분도 유지하기를 원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한편 손정의는 지난 2006년 이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던 스프린트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케이블 업체와의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수주 전 차터와 컴캐스트 임원들을 만나 스프린트를 무선통신 분야의 도매상으로 활용하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스프린트의 통신망을 쓰는 대신 회사에 투자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