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20일(현지시간) 열린 정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시장 예상대로 현행 금융정책을 유지하기로 하고 자국의 경기 판단을 소폭 상향 조정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보고 내년에 미국 중앙은행처럼 긴축 기조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조되고 있다.
이날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마이너스(-)0.1%로 동결하기로 하고, 10년 만기 국채금리 목표치도 0%로 유지하기로 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주 0.1%까지 오른 바 있다. 이와 함께 국채 등을 매입해 본원 통화를 연간 80조 엔 늘리는 양적완화 규모도 유지하기로 했다.
아울러 일본은행은 경기의 종합적 판단을 ‘완만한 회복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며 지난번보다 소폭 상향 조정했다. 지난번 회의 때까지만 해도 성명에 포함했던 ‘신흥국 경기 둔화의 영향 등으로 수출·생산면에 둔화가 보인다’는 표현을 삭제했다. 해외 경제와 소비가 회복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은행의 이같은 결정에 시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내달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 미국 경제 동향이 불투명해지는 만큼 일본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은행 역시 이번 성명서에서 위험 요인으로 미국 경제 동향과 그런 상황에서의 금융정책 운영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꼽았다. 해외 경제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신중하게 판별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구로다 총재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고나서 이 효과를 판별하느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4일 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내년에도 세 차례의 금리인상을 점치면서 일본은행도 내년에 금융 긴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미국과 움직임을 같이하는 일본 장기금리에도 상승 압력이 가해져 일본은행이 목표로 하는 0%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달들어 장기금리의 지표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한때 0.1%까지 상승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경제연구센터가 전날 발표한 민간 이코노미스트들의 경제 전망을 인용, 향후 통화정책 전망에 대해 ‘긴축’이라고 답한 건 7명으로 직전 조사 때의 3명에서 두 배나 늘었다고 전했다. ‘중립’도 13명으로 늘어난 반면 ‘완화’라는 응답은 28명에서 19명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긴축 시기로는 ‘내년 11월 이후’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는 이코노미스트들이 긴축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 긴축 관측이 강해지는 또 다른 요인은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다. 국제유가 회복 뿐만 아니라 최근 엔저와 강달러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UBS자산운용의 아오키 다이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장기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져 일본은행이 목표치를 0.1% 정도로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대선 이후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가 벌어지면서 엔저를 부추겼다. 일본은행은 장기금리를 0%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금융완화를 계속하는 가운데, 미국 금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 기대감에 급등한 까닭이다. 하지만 장기금리 목표치가 상향되면 양국간 금리 차가 축소돼 엔화 가치가 다시 뛸 수도 있다. 일본은행은 이같은 우려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응해야 하는 등 내년에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