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만 해도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은 놀라울만큼 비슷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완화에만 의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일본은행(BOJ),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물가 목표 2% 달성을 위해 양적완화나 마이너스 금리 등 통화완화정책을 펼쳤으나 인플레이션 기대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달러화 가치가 상승해 다시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는 등 악순환이 빚어졌다. 일본과 독일 등 다른 선진국은 낮은 인플레이션에 장기금리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감세와 대규모 인프라 투자 등을 내세운 트럼프의 공약에 시장에서 인플레이션 기대가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그동안 연준이 금융정책으로 이루지 못했던 일을 단번에 달성한 셈이다.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들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3조 달러(약 3504조 원)의 세금 감면 이외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향후 10년간 경제에 1조 달러가 투입될 것”이라며 “이는 적어도 트럼프 정권 초기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정정책에 의한 경기부양 확대는 ‘저금리에 의한 경제성장 유지’ 정책을 펼쳤던 연준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연준 관계자들은 정부의 긴축정책이 물가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에 걸림돌이 된다며 재정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호소해 왔다. 지금까지의 통화정책은 시중은행의 희생을 강요해 왔는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확대하면 연준은 자연스럽게 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나 이런 부담감을 덜 수 있다.
아직 트럼프 취임 전이지만 글로벌 채권시장은 이런 관측을 반영해 최근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 2개월 만에 마이너스 상태에서 벗어났다. 이는 미국 채권 가격이 급락해 일부 투자자들이 평가이익이 있는 일본 국채를 팔아 손실을 보충한 데 따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4일 장중 한때 지난해 12월 이후 최고치인 2.30%를 기록했다. 노무라증권의 마쓰자와 나카 수석 투자전략가는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 경기회복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재정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뒤섞이면서 채권 매도세가 강해지고 있다”며 “그동안 채권시장을 지배해 왔던 저금리 유지 전망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독일 국채(분트) 10년물 금리는 8개월 만에, 영국 국채(길트)는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각각 유지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재정정책에 초점이 맞춰지면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양극화가 부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정부 부채 급증에 대한 대응책도 찾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