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채권은행으로부터 자구안을 잠정 승인받은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본격적인 자구안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군살을 빼고 유동자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자구안이다. 그러나 이를 달리 표현하면 과거 우리 조선산업 구조조정 방식인 ‘인력 감축과 자산 매각’에만 집중한 결과물이다.
이들 조선사와 채권단 입장에선 복잡한 인력구조를 대폭 수정하고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최단시간 내에 적잖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막무가내식 몸집 줄이기에 대한 우려가 깊다. 금융적인 시각으로 구조조정에 접근하다 보니 대규모 인력감축의 부작용인 핵심 설계인력 및 기술 유출은 뒷전이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현금을 손에 쥘 요량으로 주요 시설에 대한 매각에 집중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조선산업의 생존에 직결되는 사안들도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 무분별한 도크 폐쇄나 조선소 매각은 조선업종 회복 시기에선 ‘미래 없는 구조조정’의 후유증으로 직결된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구조조정 주도권을 쥐고 있다 보니, 미래 지향적인 구조조정보다 은행권 익스포저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자구안을 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장에 알려진 자구안에는 △인원 감축 △비핵심자산 매각 △생산능력 축소 △비조선 계열사 분리 등이 대동소이하게 포함됐다. 그러나 앞으로 선박 발주가 살아나는 시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방안은 없다. 무엇보다 작금의 조선산업 부실을 초래했던 해양플랜트 사업 부문에 대한 근본적인 상황 개선에 대한 고민도 없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에 자구안 제출을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대우조선 자구안 제출은 지난달부터 수차례 반복되더니, 이달 들어 수주 전망 하향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아직까지 최종안을 확정짓지 못했다. 지금의 조선업 구조조정 태풍이 대우조선의 5조원대 손실 폭탄에서 시작된 만큼, 산업은행 입장에서 대우조선과 입을 맞춘 자구안이 현대·삼성중공업 등 업계에 내밀기에는 ‘영’이 서지 않는 것이 문제일까.
사실상 대우조선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더 이상 없다’는 게 설득력 있는 답이 될 것이다. 대우조선은 이미 돈이 될 만한 우량자산을 모두 처분했다. 남아 있는 자회사들은 대부분 조선업 관련 업체들이라 매물가치가 제로인 상황이다. 당초 산업은행이 아이디어 수준이라고 평가했던 방산사업부를 분할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물리적인 상황까지 고려하면 매각 가능성도 높지 않다.
시장에서는 조선업종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은 대선이 시작되기 전인 7개월 남짓이라고 한다. 촌각을 다퉈야 한다고 ‘급한 불만 끈다’는 시각으로 접근할 경우 미래 없는 구조조정으로 전락한다. 금융권 입장만 고집할 경우 차후 또 다른 위험이 다가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