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14명을 포함해 피해자 27명을 낸 가습기 살균제 ‘세퓨’에 독성 화학물질을 충분히 희석하지 않고 160배 이상 농도로 제조된 사실이 드러났다. 다른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보다 독성이 강해 40분의 1의 농도로 약하게 제조돼야 함에도 제조사가 기준치를 4배 이상 넘긴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검사)은 세퓨 제조ㆍ판매사인 버터플라이이펙트 전 대표 오모씨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 2008년 오모씨는 마크 케톡스사로 부터 컴퓨터 세척제 제조 용도로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40ℓ를 수입했다. 오씨는 PGH 중 일부를 빼돌려 수입신고 용도와 달리 인터넷 등에서 자료를 찾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했다. 이 과정에서 오씨는 인체에 무해한 수준보다 160배 이상의 농도로 PGH를 희석해 사용했다.
검찰은 “40분의 1 정도로 묽게 희석했으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었는데,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강하게 넣은 것으로 보인다”며 “농도가 진해지면서 독성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이 예상보다 잘 팔리면서 원료가 부족해지자 오씨는 지난 2010년 10월 부터는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사용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도 같이 섞어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심지어 이처럼 독성이 강한 살균제 용기에 ‘유럽연합(EU) 인증을 받은 친환경 원료 PGH 사용’ 등 허위로 광고하기까지 했다.
보건당국은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1년 살균제 원료 물질을 분석할 때 세퓨에 대해서는 PGH만 분석을 의뢰했고 PHMG가 섞인 것은 알지 못했다”며 “제품 성분을 재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판정은 환자의 임상 증상을 보고 내리는 것이므로 제품의 성분과는 상관 없다”고 덧붙였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ㆍ환경운동연합ㆍ참여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무 부처인 환경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옥시를 두둔하고 있다”며 윤성규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오씨는 옥시의 신현우(68) 전 대표와 전 연구소장 김모씨, 전 선임연구원 최모씨 등과 함께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았다.
검찰은 다음주부터 이들 외에 폐 손상을 일으킨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실무진, 임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정부가 인정한 이들 제품의 피해자는 롯데마트 41명(사망 28명), 홈플러스 28명(사망 1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