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소비를 옥죄고 있다. 내달 미국의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향후 우리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60대 이상 고령층의 경우 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 경제여건이 갑자기 나빠질 경우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23일 국제금융협회(IIF)는 한국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18개 신흥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4%로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이는 선진국 평균인 74%를 웃도는 것은 물론, 신흥 아시아의 40%에 비해 2배에 이른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전의 72%에 비해 12%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5%(작년 말 기준)에 육박해 위험한 수준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상환 비율(가처분 소득 중 가계부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가는 돈의 비율)도 11.5%에 달했다.
한국의 1인당 가계부채는 3만 달러에 달해 18개 신흥국 중 싱가포르(4만3000달러), 홍콩(3만2000달러) 다음으로 많았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소비도 위축되고 있다. 올 3분기 가계 평균 소비성향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15년 3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중 소비지출액 비중을 나타내는 평균 소비성향은 71.5%으로 1.0%포인트 하락했다. 평균 소비성향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는 것은 가계의 씀씀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보경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평균 소비성향이 줄어드는 것에는 고령화의 영향이 크다”면서 “은퇴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분할상환과 고정금리 확대를 유도하고 있지만 가장 큰 우려는 고령층이다. 변변한 소득이 없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빚 부담이 다른 연령층이나 선진국의 동년배들에 비해 과중하고 상환 여력은 한층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고령층 가계부채의 구조적 취약성’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1%로 전 연령대 평균(128%)보다 높았다.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15개국과 비교해 전 연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수준이다.
고령층의 부채상환 여력은 다른 나라보다 취약하다. 우리나라 고령 가구의 소득 중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연금이나 이전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9% 정도다. 이 비중이 70%를 넘는 독일, 네덜란드와 비교해 한참 뒤진다. 금융자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74%로 50%대 미만인 미국이나 유럽 국가보다 월등히 높았다.
김 연구위원은 금리가 오르는 등 거시금융 여건이 급격히 변하면 소득 안정성, 자산 유동성이 낮은 고령층의 부채 상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