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봉유설의 글은 이렇게 돼 있다. “옛날 어떤 도둑이 슬갑을 훔쳤는데 어디에 쓰는 건지 몰라 이마 위에 걸치고 외출하자 사람들이 보고 웃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표절한 문장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것을 가리켜 슬갑도적이라고 한다.”[昔有偸人膝甲而不知所用 乃貼額上而出 人笑之 故今謂竊取他人文字而誤用者 爲膝甲賊云]
홍만종(洪萬宗)이 숙종 4년(1687)에 쓴 순오지(旬五志)에도 이 말이 나오지만, 이수광의 말을 받아 글 도둑이라는 속담 풀이를 한 정도다. 슬갑과 관련된 말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시경 소아(小雅)편으로, 여러 군데에 들어 있다. ‘남유가어지십(南有嘉魚之什)’의 시구를 옮겨 볼까. “저기 수레 가마를 끄는 네 필의 말은 아름답고, 크고 당당하게 우리를 압도하나니 붉은 슬갑(膝甲)에 금빛으로 장식한 군화가 돋보이네. 제후들은 동도(東都)를 찾아 끊임없이 모여든다.”[駕彼四牡四牡奕奕赤芾金舃會同有繹] 여기 나오는 적불(赤芾)이 바로 슬갑이다.
표절 논란을 빚은 소설가 신경숙씨처럼 남의 글을 훔쳤다는 비난과 고발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글이 어디에 쓰는 건지도 모르고 베껴 먹다 낭패를 당하는 경우는 더 우습지 않을까. 슬갑을 여성의 속곳이라고 쓴 어느 여교수의 칼럼이 퍼지고 번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참 우스운 일이다. 슬갑을 한자로 膝匣이라 쓴 곳도 있어 헷갈린다. 숙종실록엔 그렇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