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공급 과잉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자 국내 유업계가 결국 원유(原乳) 감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2003년 이후 11년 만이다. 낙농가의 소득 감소를 우려해 갈등을 피하고자 버텼지만, 재고량이 12년 만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데다가, 소비가 부진해 더 이상 물러설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낙농가의 반발이 심해 제대로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18일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이달부터 낙농진흥회는 농가마다 배정한 쿼터 물량의 일정 부분은 정상 가격으로 구입하고, 이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10분의 1 가격으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감산을 진행 중이다. 쿼터 물량의 96.53%까지는 기존 가격인 ℓ당 940원에 구입하고, 나머지 3.47%는 10분의 1 가격인 ℓ당 94원에 매입하는 식이다. 감산이 진행되는 대상 농가는 낙농진흥원에 원유를 공급하는 약 1400여 농가로, 기간은 내년 말까지다.
낙농진흥회 측은 “정상가를 크게 밑도는 값에 원유를 사들여 농가의 자율적인 생산 감축을 유도할 방침”이라며 “올해 원유 잉여 생산량이 11만여톤에 달해 증가한 물량의 일부를 농가가 감축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행 기간 중 공급 과잉이 완화되면 다시 매입가를 정상화할 방침이다.
서울우유협동조합도 최근 이사회에 감산 안건을 상정했으며 조만간 감산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국내 최대 시유(젖소에서 짜낸 우유를 가공, 포장해서 시중에서 파는 우유) 공급처로, 하루 생산량만 2000ℓ에 달한다. 이는 전체 물량의 40%가량에 달한다.
이처럼 국내 원유 생산량의 70%가량을 취급하는 양 단체가 원유 감산에 나선 것은 극심한 공급 과잉에 기인한다. 국내 원유 재고량은 7월 18만6993톤, 8월 18만6408톤, 9월 18만7664톤을 기록한 데 이어 10월에는 19만9407톤으로 늘었다. 지난 1월과 비교할 때 약 6만2000톤이 늘어난 수치다.
분유 재고도 2012년 7469톤, 2013년 7328톤에 이어 올해 9월 기준 1만4970톤으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두 배가량 늘었다. 소비 부진에 겨울 날씨가 과거에 비해 따뜻한 이상고온 현상까지 겹치면서 재고는 더욱 쌓일 것으로 우려된다.
매일유업과 남양유업 등 유가공 업체들은 원유 감산을 반기고 있지만, 수익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관계자는 “유업계가 전례없는 경영 위기 사태를 맞이했다”며 “복잡한 원유의 유통구조를 개선해 가격을 낮추고 치즈 등 유제품 수출을 확대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낙농가의 반발이 거세 감산이 제대로 시행될지도 미지수다. 한 유가공업체 관계자는 “낙농가를 대변하는 한국낙농육우협회가 감산 결정에 반발하고 있어 감산이 제대로 시행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