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시계에서 유일하게 움직인 것은 국민의 눈높이와 정부의 불신감 팽배다.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는 세월호 참사 관련 수습조치의 하나로 이뤄진 제2기 내각 인선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안대희·문창극 등 2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와 역사관 논란으로 빚어진 자진사퇴,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의 도덕성 논란 자진사퇴, 김명수 교육부 장관 내정자의 지명철회는 그만큼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해 사회지도층과 정치권은 과도한 신상 털기와 여론재판이 문제가 있다고 항변한다. 현재와 같은 국민의 눈높이와 청문회의 잣대로는 아무도 뽑을 수 없어 인사청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못난 지도층의 모습을 스스로 자인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황희 정승도 지금의 청문회에선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럴까.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하는 발언이 아닐까. 정쟁에 얽매인 정치인들이 자신의 논리를 마치 국민의 논리처럼 호도하기 때문이지 결코 대다수 국민은 그들의 무조건적 상대를 비판하는 논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과연 정치인이나 정부 당국자들이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인정하고는 있을까.
이제는 정치권이나 정책 집행 당국자들도 과거 그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획기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말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천명하기보다 실제 정치적 결단이나 정책에서 반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고심의 흔적이라도 보여야 한다.
세월호특별법 표류에서 나타난 여당과 야당의 정쟁에서 무조건 반대가 아닌 대안이 있는 협상을 이끌어 내야 한다. 대안 없이 사법권 침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여당이나 국민 분열을 자초한 야당의 포퓰리즘 법안의 밀어 넣기는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의 불신만 더 조장하고 있다.
유병언 수사에서 보여 줬던 검찰과 경찰의 불통과 정부의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모습도 국민 불신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불신의 골을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지금 놓친다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순천에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이례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까지 나서 전국 생중계로 확인해 줬지만 믿지 못하는 국민이 절반을 넘는 것은 충격적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과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대답이 57.7%로 조사됐다. 반면 신뢰한다는 의견이 고작 24.3%에 그친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아직 이 의미를 모르는 무뇌한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있다면 이들부터 솎아내는 작업이 진정한 국가개조의 시작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인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진정성을 보이며 세월호 수습 현장에서 100일 넘게 온 힘을 쏟듯 유가족을 비롯한 국민에게 진정성을 보일 때다. 눈뜨고 속절없이 희생시켰던 어린 영혼들을 구하지 못한 책임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을 정부와 정치권이 한마음으로 이뤄내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어린 영혼을 잃고 슬퍼하는 국민에게 여당이니 야당이니 하는 정치적 공방이 제대로 귀에 들어올까. 정부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중한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책을 내놓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정책 신뢰성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여당도 야당도 모두 침몰했다. 이미 대한민국 시계는 멈춰 서 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시계를 다시 돌리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과거의 구태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국가개조에 나서지 않는 한 이 같은 참극은 또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와 불신을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