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골프 대회장이 술렁였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김하늘(26ㆍ비씨카드)의 티샷 볼이 숲 깊숙한 곳에 박혔기 때문이다. OB(아웃오브바운드)다. 20홀의 팽팽했던 긴장감은 거기까지였다. 승리의 여신은 김하늘을 외면하는 듯했다.
지난 25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풍경이다. 김하늘은 결승 진출 문턱에서 허윤경(24ㆍSBI저축은행)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김하늘은 그린 주변 칩샷을 거짓말처럼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갤러리들은 다시 한 번 술렁였다. 피를 말리는 연장승부는 결국 김하늘의 드라마틱한 승리로 끝이 났다. 김하늘의 집중력이 빛난 한판이었다. 김하늘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던 갤러리들은 승리의 기쁨을 함께 했다.
김하늘은 늘 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닌다. 한국 프로골프사에서 ‘흥행의 여신’을 꼽는다면 단연 김하늘이다. 해외 투어에 진출하지 않은 순수 국내파로서 김하늘만큼 유명세를 탄 선수는 없다. 무엇보다 KLPGA투어 흥행의 주역이다. 김하늘이 프로데뷔한 2006년만 해도 후원 기업은 많지 않았다. 하이마트, 하이트, CJ, KTF 등 일부 대기업의 특정 선수 후원이 전부였다. 그러나 김하늘의 프로데뷔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KLPGA투어 흥행과 김하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김하늘은 2007년 프로데뷔 이후 줄곧 미녀골퍼라 불리며 수많은 갤러리를 필드로 불러들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짧은 치마다. 사실 골프 대회장에서의 미니스커트는 김하늘이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는 반바지나 무릎까지 내려오는 투박한 치마 패션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김하늘 이후 필드의 미니스커트 패션은 급속히 확산됐고, 그것이 여자프로골프 흥행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그에게 미니스커트를 제안한 사람이 아버지 김종현(51)씨였다는 점이다. 김씨는 딸(김하늘)에게 ‘이왕이면 시원시원하고 보기 좋게 짧은 치마를 입는 게 어떠냐’고 권했고, 김하늘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하늘의 미녀골퍼 수식어가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실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김하늘은 통산 8승으로 2011년과 2012년에는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슬럼프도 있었지만 8년 동안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끊임없는 자기개발이다. 사소하지만 짧은 치마도 자기개발에서 비롯됐다. 무엇보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써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선수다. 바로 그것이 수많은 갤러리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