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휙휙’ 소리를 내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 민족성인 ‘빨리빨리’를 반영하듯 1년 사이 건물이 없어졌다, 새로 세워지기도 한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도 서울 한복판인 종로 옥인동엔 옛 정취가 살아 숨쉬는 가옥이 있다. 우리의 순수 전통한옥은 아니지만 신문물이 들이닥쳤던 20세기 초 사회상을 보여주듯 한국, 중국, 서양의 건축 양식이 한데 뒤섞여 만들어진 박노수 가옥이다.
2011년 박노수 화백이 자신의 작품과 소장품 1000여점을 종로구에 기증하면서 지역 1호 구립 미술관 건립 계획이 추진, 오랜 공사를 거쳐 2013년 9월 11일 드디어 ‘박노수 미술관’으로 대중에게 첫선을 보였다.
한국화 1세대인 박 화백은 해방 이후 국내 화풍에 남아 있던 일제의 잔재를 떨쳐 버리고 독자적 화풍을 시도, 한국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힘쓴 인물이다. 집에는 1980년대 돌연 교수직을 그만 두고 작품 활동에 매진한 박 화백의 체취가 곳곳에 배여 있다.
조선후기 문신이자 친일파 윤덕영이 1938년 딸을 위해 지었다는 이 집은 빨간 벽돌로 만들어지 1층 위에 서까래가 보이는 지붕을 얹은 2층 구조가 이채롭다. 내부를 둘러보면 아담한 규모에도 벽난로가 세 개나 있고 마루 바닥과 문짝, 문설주에는 모두 오래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 홍송이 쓰이는 등 당대 윤덕영이 얼마나 위세를 떨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여의륜(如意輪)’이라고 적힌 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만사가 뜻대로 잘 돌아간다’는 뜻을 품고 있다.
기존에 있던 가옥을 개조·훼손하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해 만든 미술관 내부 1층에서는 박 화백의 대표작인 ‘달과 소년’, ‘류하’ 등을 볼 수 있다. 서재와 공부방 등으로 쓰이던 2층에는 산수화·문인화 등 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특히 꼼꼼한 주인의 정성어린 손길을 말해주듯 정갈하게 꾸며져 있는 정원에서는 박 화백이 직접 수집한 정원석과 수석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미술관 뒤뜰 사이로 난 조그마한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서 도심을 둘러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박노수 미술관 개관 전시는 12월 25일까지 계속되며 입장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