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신 예비역 중장
진정한 군인의 마지막 길은 함께 포화 속을 누볐던 일반 사병과 함께였다.
지난 25일 별세한 채명신 초대 주월남 한국군 총사령관은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 달라. 파월장병과 함께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족과 국방부는 이와 관련한 협의를 마치고 현충원 사병묘역에 채명신 예비역 중장을 안장할 예정이다.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로 장군이 사병 묘역에 안장될 전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27일 "장군신분으로서 장군묘역 안장 혜택을 포기하고, 죽어서도 월남전 참전 전사자와 함께 하겠다는 고인의 숭고한 뜻과 월남전에서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서울현충원 사병묘역 안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역시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유족들에게 정부의 결정을 공식 전달했다.
채명신 예비역 중장은 1926년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공산치하를 벗어나기 위해 월남, 1948년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임관했다. 소위 임관이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2사단 25연대 중대장, 유격대장, 7사단 5연대장, 3사단 참모장 및 22연대장으로서 수많은 전투에 참전해 전공을 세웠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전쟁은 월남에서였다. 한국전쟁 당시 전장에서 일궈낸 공훈을 인정받아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근무했다.
현대사에서 흔하지 않은, 한국전쟁과 월남전 모두를 전장에서 보낸 야전 군인의 산증인이다.
당시 베트남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용전분투해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전 세계에 한국군의 용맹을 과시하기도 했다.
중장으로 예편 후에는 1972~1977년 주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대사를 거쳤으며 대한해외참전전우회 명예회장,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회장,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태극 무공훈장(1회), 화랑 무공훈장(1회), 충무 무공훈장(3회), 을지 무공훈장(2회), 국선장, 방위포장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채명신 예비역 중장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은 "채명신 예비역 중장, 어려서 만화로된 위인전을 읽은 적이 있다", "채명신 예비역 중장, 장군으로서 사병묘역을 원했다니 진정한 군인답다", "채명신 예비역 중장, 1평 남짓한 묘역도 고인의 뜻을 기리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