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일본 재정적자를 반면교사로-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입력 2013-10-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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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재정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기초연금이 발화점이 된 복지수준 문제, 경제성장 정체에 따른 세수감소와 증세 문제, 급증하고 있는 국가채무 문제, 재정제도 등등 한국 재정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로 논의가 번지고 있다. 그런데 세계 최대의 재정 적자국 일본이 우리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실험이 불가능한 경제문제에 대해 일본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와 경제·산업 구조나 발전과정, 또 인구구조도 유사하기 때문에 사고 실험을 하기에는 더더욱 적격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약 1000조 엔으로 GDP의 220% 수준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재정위기국보다 국가채무 비중이 훨씬 높은 세계 최대 재정 적자국이다. 일본의 본격적인 재정적자는 ‘잃어버린 20년’ 초입인 1992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저성장과 재정적자는 상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저성장을 우려하는 우리도 재정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재정적자 과정을 살펴보자. 1992년 재정적자액이 5.8조엔에서 2009년에는 43.6조엔으로 17년간 적자규모가 7.5배 늘어났고, 누계 적자액은 389조엔에 달했다. 적자발생 요인은 세입 감소분이 약 46%, 세출 증가분이 54%이다. 일본 재정적자는 경제침체로 인한 세수 부족이 절반, 고령화 등으로 인한 세출 확대가 절반씩 기여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정부는 대부분 공채발행액 392조엔으로 메워왔다. 17년간 빚으로만 적자를 메워온 셈이다.

세입 감소에는 소득세가 86%, 법인세가 42%를 기여하였으나, 이 시기 소비세를 실시하여 35% 정도 세수 증대를 가져왔다. 즉 경제침체로 인한 소득세·법인세 감소가 세수 감소의 주범인 것이다. 다음으로 세출 증대에는 사회보장비 52%, 공공사업비 25%, 이자 지불 등 공채발행비가 12%씩 각각 기여하였다. 사회보장비는 연금을 지원하는 사회보험비가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재정적자는 경제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 또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공공사업비 등 경제침체 요인이 4분의 3 이상을 차지한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경제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본의 재정적자 과정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국민들은 정부가 세금을 줄여주고, 공공사업으로 지역개발을 해주고, 또 연금을 보조해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을까? 답은 노(NO)이다.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중산층의 고통 즉‘통세감(痛稅感)’에 대해 조사해보니, 일본은 세금을 많이 내는 유럽 복지국가들보다도 높다고 조사됐다. 유럽 국가들보다 세금이나 사회보장비 부담은 적지만, 교육·의료·사회보장 등 국가로부터 받는 각종 서비스의 양과 질도 낮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질부담률은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은 국민들의 조세저항이 심하다. 이 대목은 상당히 중요하다. 국민에게 제공하는 복지·서비스와 국민으로부터 받는 세금을 어떤 수준에서 균형을 맞추어야 할지 기본적인 재정구조 설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통세감 완화를 위해 일본정부는 지속적으로 감세를 실시해왔다. 1981년 이후 감세 없는 증세는 한 번도 실시한 적이 없다. 이번에 소비세를 인상하기로 한 것도 법인세 감면과 병행하여 추진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 증세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준다. 또 하나 일본재정 적자과정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치권이 감세나 복지를 득표수단으로 삼아왔으며 일본의 재정 의사결정 시스템으로는 이를 제재할 수단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1973년 당시 여당인 자민당의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은 정권의 위기감을 느끼고 복지를 대폭 확대하여 일본의 재정적자 구조가 정착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점 또한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을 알면 한국이 보인다”라는 말은 재정문제에 해당하는 말처럼 들린다. 앞으로 우리 재정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자국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와 다른 점이 하나가 있다. 일본가계의 금융자산이 약 1600조엔에 이른다는 것이다. 국가의 빚을 일본가계가 국채매입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유럽국가들과 달리 국가채무가 많아도 재정이 파탄하지 않는 이유이다. 일본은 “부자집 망해도 20년은 간다”는 배경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그마한 재정불안 불똥에도 금융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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