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 실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선 결국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후순위로 미루지 말고 선입법 해야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 용어가 빠진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다. 새 정부는 대기업 관련 경제민주화 정책 입안에 속도를 내며 공약 실천 의지를 보여줄 계획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는 22일 “대기업집단 계열회사 간 신규순환출자 금지 조항 신설은 올 상반기 입법계획에 포함했다”며 “이미 입법 발의된 안들이 있어 야당과 협의와 수정을 거치면 이른 시일 내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성걸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새누리당 의원)도 “대기업 신규순환출자 금지와 관련된 법 개정과 규정 관련 사안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 대주주의 계열사 지분 확대가 차단된다.
인수위는 순환출자에 대한 의미를 폭넓게 해석했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 강화를 위한 추가 출자도 신규 순환출자로 간주해 금지하기로 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지분을 더 이상 늘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제도가 입법화되면 한 계열사의 지분을 통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 왜곡된 지배구조가 심화되지 않는다.
이와함께 인수위는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공시의무를 부과했다. 대기업들이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강제하지 않았지만 자벌적·점진적 해소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대기업 집단의 금산분리는 대선 공약집에 비해 강화했다. 공약집에서는 재벌 소속 금융·보험계열사가 보유 중인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을 단독 금융회사 기준 향후 5년간 5%로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국정과제에서는 기준을 단독 금융회사에서 재벌 소속 모든 금융계열사를 합해 5%로 바꿨다.
삼성전자 주식은 삼성물산 등 비금융계열사가 8.93%, 삼성생명(7.84%)·삼성화재(1.26%) 등 금융계열사가 8.74%를 가지고 있다. 이전에는 이들 계열사가 15%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금산분리가 강화되면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이 5%로 묶여 삼성전자에 대한 계열사의 의결권은 13.93%로 축소된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금산분리 강화로 산업과 금융자본이 거리를 둬야 하는 원칙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며 “이번 금산분리 기준 강화로 인해 당장 기업들의 소유지배 구조가 변화하거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발생할 우려가 커지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정책 중 하나인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진출에 대한 제재도 크게 강화됐다. ‘사업조정 일시정지 명령제’를 도입해 대형마트의 제재 수위를 높였다.
사업조정 일시정지 명령제는 명령불이행 기간 동안 얻은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전에는 사업조정제도 위반에 대한 처벌 수위(1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가 약했다. 일부 대형 유통업체들은 처벌을 감수하고 매장을 냈다.
대기업 관련 경제민주화 정책 입안이 속도를 내지만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 용어가 빠진 것을 두고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 이행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실제 대기업 총수 일가의 처벌과 관련한 경제민주화 정책은 국정과제에서 상당부분 후퇴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 근절은 공약집에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한다’고 못 박았지만 국정과제에서는 ‘형량 강화’ ‘검찰 구형에 못 미치는 판결 선고 시 원칙적으로 항소’로 의미가 축소됐다. 또 ‘총수 일가’에서 ‘지배주주’로 표현을 변경했다. 대기업·지배주주·경영자의 사면권 행사는 ‘엄격히 제한’에서 ‘사면권을 엄격하게 상신(보고하다)’으로 수위를 낮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은 대선 공약 내용이 유지됐다.
강석훈 인수위 국정기획조정 분과 위원(새누리당 의원)은 “‘원칙이 바로선’이라는 개념이 좀더 광의로 적용될 수 있어 이 표현이 저희의 의지를 더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향후에도 ‘원칙이 바로선’, ‘경제민주화’ 이 두 표현은 필요에 따라서 계속 사용할 용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