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드디어 16강이다”
거리의 함성이 천지를 갈랐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서로를 얼마나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함께하는 것만으로 그 모두가 열두 번째 국가대표였다. 소리를 질렀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힘겹게 소리를 내뱉었다. “드디어 16강이다. 원정 첫 16강이다. 대한민국이 해냈다.”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2대2로 비긴 조별리그 3차전을 벌인 23일 전국에서 60만여명이 거리응원에 나섰다. 이들은 서울광장, 서울 삼성동 영동대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등 전국 60곳 이상에서 대한민국의 거리를 달궜다. 승리의 축제를 즐기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전반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내주자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일순간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탈락의 불안함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영동대로에서 거리 응원에 나선 인천에 사는 최모(23)씨는 "이 경기 보려고 군대에서 외박 나왔다"며 "패스미스에 수비가 불안해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시민들은 “괜찮아, 괜찮아”라고 소리치며 힘을 북돋았다. 전반 37분 그리스전 첫 골의 주인공인 이정수 선수가 동점골을 성공시키자 광장은 다시금 달아 올랐다.
서울광장을 찾은 박인호(학생ㆍ강서구ㆍ17)씨는 "이정수가 또 일낼 줄 알았다"며 "초반부터 골이 안들어가서 마음을 졸였는데 골이 들어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후반전의 선전을 기대했다.
후반전이 시작하자 시민들의 기대는 현실이 됐다. 박주영이 후반 4분 프리킥을 역전골로 성공시켰다. 지난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넣은 자책골의 아픔을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거리에 운집한 시민들은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박주영이 해낼 줄 알았다", "이대로 16강 가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쁨은 잠시였다. 후반 24분 김남일이 페널티 지역에서 나이지리아 공격수에게 백태클을 가했다. 주심은 주저 없이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야쿠부는 여유 있게 성공시켰다.
아쉽게 동점이 됐지만 시민들은 기죽지 않았다. “비겨도 좋다”를 외쳤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데미첼리스가 그리스를 상대로 골을 넣어 1대0으로 앞섰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나이지리아와 비겨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한국과 나이지리아는 2대2를 유지한 채 종료 휘슬이 울렸다. 선수들은 서로를 얼싸 안았다. 이영표 선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광장도 따라 울고 함께 기뻐했다. 경기가 종료 된 뒤에도 시민들은 쉽게 떠나지 못한 채 승리의 여운을 만끽했다.
서울광장에서 밤새 거리응원을 함께한 조혜경(회사원ㆍ27ㆍ봉천동ㆍ여)씨는 "16강 진출이 꿈만 같다"며 "내친김에 4강까지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수(회사원ㆍ30ㆍ잠원동)씨는 "2002년의 영광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다"며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외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