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중국 기조 따라 전략 구상”
트럼프 2기 정부 출범하게 되면 '메이드 인 아메리카'와 '중국 때리기' 전략이 더 견고해질 전망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선거 구호로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는 관세 인상, 이민자 추방,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종식, 전기차 의무화 취소 등 경제 회복 및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을 강력히 어필해왔다.
자동차와 배터리, 반도체 산업 등 우리 주력 산업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주요 산업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단 국내 주력 산업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먼저 나오고 있다.
그가 관세 대통령을 자처한 만큼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선거 결과를 지켜본 주요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수립에 나섰다.
그동안 혜택을 받아왔던 자동차와 배터리, 반도체 관련 기업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반면 그동안 직접 보조금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디스플레이 등 일부 산업은 중국에 대한 제재 강화로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공존하고 있다.
먼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전망이다. 트럼프 후보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과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줄곧 비판해온터라 해당 정책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계산기를 다시 두들기며 수익성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440억 달러(약 61조 원)를 투자하고 64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받게 돼 있다.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추가로 테일러시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구축하는데 38억70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4억50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예정이지만, 보조금 정책 방향이 틀어지면 투자 계획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 기존 지원 내용이 자국 중심으로 수정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기존 지원 내용이 완전히 폐지될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반면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이 없는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는 오히려 트럼프 당선 시 대(對)중국 제재 강화로 인한 반사 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나온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트럼프는 대중국 제재나 비협력 기조가 크다”며 “중국 BOE 등의 견제로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 제품 사용을 확대하는 반사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는 우려감을 내비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기조를 ‘친환경을 빙자한 사기(Green New Scam)’이라고 비판해 왔다.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를 가동 중이다. 미국에서는 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으로 자국에서 만든 전기차를 구매할 시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
해당 공장에서 생산하는 아이오닉 5는 기존에는 보조금 대상이었으나, 향후에는 보조금 지급 여부도 불투명해질 가능성도 있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RA가 완전한 폐지는 안 되더라도 보조금을 축소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전기차 수요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투자한 것에 대한 재정적 손실이 우려된다”면서도 “현대차는 HMGMA 공장이 하이브리드차도 생산할 수 있도록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유연한 대처를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면서 세계 무역 판도를 바꾸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으로 자동차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에도 관세 폭탄이 이어질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에 60%를, 나머지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는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자동차 대미 수출액은 19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9% 늘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국내 생산 물량 355만 대 중 111만대(31.3%)를 미국에 수출했다. 미국 현지 생산 물량도 77만 대에 달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집권하면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곳은 굉장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며 “현대차는 대미 흑자가 크고 시장 내 점유율도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10% 관세 부과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친밀한 관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우리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자율주행 분야에서 뒤처진 가운데 테슬라가 우위 굳히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크다”고 전했다.
배터리 업계도 노심초사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조지아주 현대차 합작공장과 오하이오주 혼다 합작공장을, SK온은 켄터키주 공장의 가동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지원 축소 가능성이 대두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계획하고 있는 대규모 생산 확대와 고용 창출에도 상당한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IRA 전면 폐기 등의 가능성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이 주를 이루며 ‘지나친 우려’라는 반응이 많다.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폐지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IRA 수혜주’와 관련된 연방 상하원 의원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당장 반도체 지원법을 폐기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반도체 공장 공사 기한에 관한 규정 등을 더 타이트하게 요구할 수 있다”며 “이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주요 관건으로 바이든 행정부에서 맺어 온 동맹국 중심 영업활동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