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다니 주책없는 사람이군.” “너도 참 주책이야, 주책.”
일정한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음을 뜻하는 말은 ‘주책없다’일까, ‘주책이다’일까. 상반된 의미처럼 보이지만 ‘주책없다’와 ‘주책이다’는 실제 같은 뜻으로, 둘 다 맞는 표현이다.
주책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다. 이 단어는 원래 한자어 주착(主着)에서 온 말로, 주착은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줏대가 있어 흔들림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거쳐 사람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주착’에서 ‘주책’으로 모음의 발음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발음이 바뀌어 굳어진 형태인 주책을 현실음의 변화로 인정해 주착은 버리고 주책을 표준어로 삼았다.
앞서 주책의 사전적 의미에 근거하여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뜻으로 나타낼 때는 부정어 ‘없다’를 붙여 ‘주책없다’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부정어를 붙이지 않은 ‘주책’ ‘주책이다’도 같은 뜻이다. 그 이유는 뭘까.
이 또한 주착에서 주책으로 표준어가 바뀐 것처럼 언중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이는 정말 주책이야”와 같이 예전부터 사람들이 ‘주책없다’는 의미로 ‘주책이다’도 많이 사용하였다. 사람들이 ‘주책없다’에서 부정어 ‘없다’를 뺀 ‘주책이다’를 뒤섞어 쓰다 보니 이전에는 국립국어원이 “‘주책이다’는 ‘주책없다’의 잘못”이라고 설명하며 쓰지 않기를 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계속 쓰이자 2016년 ‘주책이다’도 표준형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다만 ‘주책이다’는 주책(명사)+이다(서술격 조사)의 결합형이므로 표준어로 처리하지 않고, 표준형으로만 인정했다. 주책은 원래 뜻 외에 의미 전이가 이뤄져 “주책을 부리다” “주책이 이만저만이 아니야”와 같이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이라는 의미도 더해졌다. 2017년에는 접미사 ‘-맞다’, ‘-스럽다’가 결합한 ‘주책맞다’와 ‘주책스럽다’도 표준어로 인정하였다.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단어의 소리와 의미가 변하거나 문법 요소가 변화하는 특성이 있다. ‘주착’에서 ‘주책’으로 표준어가 바뀌고, 비표준어였던 ‘주책이다’가 표준형으로 인정받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