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통 대기업 인사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유통채널의 무게 중심이 온라인으로 급속히 이동함에 따라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어느 때보다 세대 교체와 물갈이가 두드러져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뚜렷했다.
유통 빅3의 인사 키워드는 ‘FIRST’로 요약된다. 패션(F: fashion) 부문 대표들의 승진 발탁이 이어졌고, 위기 우려 속에서 오너의 조직 개편(R: renovation) 의지가 강하게 드러났다. 또 불필요한 조직의 통합(I: integration)과 소비트렌드 변화에 따른 전략 수립(S: strategy)에도 무게를 뒀다. 여기에 내부의 발탁인사는 물론 외부 수혈(T: transfer)까지 이뤄지는 등 변화의 바람이 거셌다.
패션 CEO를 주력 계열사로 이동시킨 것은 패션 시장 전반이 위축됐지만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한섬이 견조한 실적을 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화장품 사업을 확대하며 신시장을 개척한 결과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전년대비 각각 23.7%, 105.3% 끌어올렸다.
한섬을 맡았던 김형종 대표 역시 효율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를 과감히 없애고 온라인 비즈니스를 강화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지난해 매출 1조 2992억 원의 신화를 썼다.
◇통합(I: integration)=통합과 조직신설도 눈에 띈다. 신세계는 상품경쟁력 강화를 위해 식품생활담당을 식품담당과 생활아동담당으로 세분화했다. 또 패션자주담당과 브랜드전략담당 기능을 통합했다.
특히 롯데는 복잡한 사업부 구조가 빠른 유통환경에 대응하는데 방해요소로 지적돼 온 만큼 강희태 신임 유통BU장이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e커머스 등 유통계열사를 총괄하는 원톱 대표이사가 되면서 역할이 강화됐다.
◇쇄신(R: renovation)=어느 때보다 과감한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도 이번 유통업계 인사의 특징이다.
롯데는 강희태 백화점 대표이사를 유통BU(사업부문)장이자 롯데쇼핑 원톱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것을 비롯해 유통 계열사 대표이사를 절반가량 교체했다. 유통 계열사의 신임 대표들은 모두 1960년대생 인사로 채워졌다. 백화점 사업부장에 롯데홈쇼핑의 황범석 전무, 슈퍼 사업부장에 롯데마트 남창희 전무, e커머스 사업부장에 롯데지주 조영제 전무, 롭스 사업부장에 롯데백화점 홍성호 전무가 선임됐다.
롯데 관계자는 “20020년 롯데의 정기임원인사는 그룹의 미래 성장 전략에 연계한 조직 개편과 젊은 인재로의 세대교체”라면서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장의 틀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어야 한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전략(S: strategy)=기존의 성공 DNA를 다른 계열사로 이식하는 전략도 활발하다. 롯데쇼핑 백화점 백화점 사어부장으로 선임된 황범석 롯데홈쇼핑 영업본부장(전무)의 경우 홈쇼핑의 PB브랜드의 성공적 안착을 백화점에 이식하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다. 온라인 통합작업이 한창인 롯데그룹의 온라인 컨트롤타워인 롯데쇼핑 e커머스 대표에는 조영제 롯데지주 유통전략 담당 전무가 내정됐다. 유통전략을 총괄하던 시각으로 온라인 분야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국내 패션부문을 신설해 부문 대표 체제를 도입하는 등 국내패션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한편, 신규사업 추진 강화를 위해 사업기획본부를 신설하고, 본부 아래 신규사업담당, 기획담당, 마케팅담당을 별도로 두었다.신세계디에프는 기존 마케팅담당을 디지털경영담당 및 전략영업담당으로 이원화했다.
대표이사 외에도 정 부회장의 복심이 담긴 인사 스타일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SSG닷컴이 대표적이다. 정 부회장이 온라인 비즈니스 강화 기치를 내걸면서 SSG닷컴은 올해 인사에서 3명의 신규 임원 승진이 이뤄졌다. SSG닷컴은 임원만 13명에 달한다. 지난해 상무보 승잔자가 1명이었던 것과 달리 파격적인 승진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