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트럼프의 적이 된 파월

입력 2019-09-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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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일주일 전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인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향해 ‘적(敵)’이라는 표현을 쓰며 성토했다. 이미 의장직 해임 방안을 강구했다고 알려진 터라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중앙은행의 장이 임기 중 사임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올해 6월 터키에서, 그리고 작년 말 인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경기를 부양해 지지도를 높이려는 정권의 주문에 협조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코앞의 국내 사정이 어려운데 왜 미국의 집안 싸움까지도 알아야 할까? 터키나 인도에 비해 미국이 잘못되면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1997년 아시아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정치와 경제 현상은 서로 영향을 미치나 종종 그 영향이 일방통행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선거를 앞둔 집권 세력은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띄우려 한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경기변동과 선거 주기가 동조화된다는 것이 ‘정치적 경기순환론’이다. 금리와 통화량을 도구로 하는 통화정책이 대표적 단기 경기 조절 수단이니 중앙은행은 선거를 앞두고 경기 호황을 원하는 정권의 영향을 받게 된다.

경제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서는 정치적 경기변동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중지에 따른 해결책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인데,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제도가 흔히 거론된다. 예를 들어 연준 이사의 임기가 14년이어서 최장 임기 8년인 대통령의 압력에서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경기 진작에 조급한 대통령이 통화정책 때문에 연준 의장을 공개적으로 적대시하는 지금의 상황은 미국에서는 전대미문의 일이다.

미국 경제는 아직까진 양호하지만 불안감이 점증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의 정치 불안, 경기 부진 등의 요인도 있으나 더 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이길 수 있다’며 시작한 무역 전쟁이다. 중국이 주된 대상이지만 다른 나라의 수입품에도 난삽하게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세 및 무역 전쟁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조만간 승패가 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를 주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달러화 가치를 낮춰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불안이 고조될수록 국제 금융시장에서 최대 안전 투자처인 미국으로 자금이 유입된다. 이는 달러화에 대한 수요를 늘려 달러화 가치가 오히려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래저래 속 터지는 일이다.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도 간단치 않다. 소비재 품목 연간 매출의 30% 정도가 11월 하순 추수감사절 이후에 발생한다. 연말 쇼핑 시즌에 관세 부과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유권자의 불만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얼마 전 큰 폭으로 관세를 올리겠다던 입장을 번복했다. 사정이 더 어려워질 거라는 중국은 아직까지 동요하는 기색이 뚜렷하지 않다. 필자는 지난주 방문한 런던에서 많은 중국인 단체 방문객들을 보았다. 자국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지 모른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지 않은 이들이거나, 혹은 중국 위기설이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치적 경기순환론이 미국에만 적용된다는 것이 미국과 중국 간의 큰 차이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피해망상에 젖은 유권자들을 자극해 예상을 깨며 승리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산과 매출 등의 기업 활동이나 저렴한 수입 공산품에 의존하는 소비자들의 행태는 지난 수십 년간 매우 개방된 경제 구조에 맞게 결정되었다. 트럼프 정부의 그간 정책은 이런 견고한 행태를 바꾸기에 크게 미흡했다. 오히려 관세와 무역 장벽은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골칫거리, 생활비 인상 등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중국이 미국 농산물 수입을 줄이자 트럼프 지지층이 많은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 같은 상황에 금리 인하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연준이 무역 분야에서 ‘버티기 전략’으로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어렵게 만드는 시진핑 중국 대통령과 대동소이한 ‘적’인 것이다. 정치적 경기순환을 막기 위해 제도를 만든 이들의 선견지명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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