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사업장들이 그간 정부가 쌓아 올린 규제에 이어 당초 예상보다 분양가를 낮춰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에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을 의존해야 하는 구도심의 경우 공급 지연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HUG는 6일 ‘고분양가 사업자 심사기준’을 변경한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는 24일 분양 보증 발급 분부터 아파트 신규 분양 시 분양가를 주변 시세 수준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우선 분양보증을 내주는 분양가의 기준을 기존 최대 110%에서 105%로 낮췄다. 인근에 1년 이내에 분양한 아파트가 있으면 해당 단지의 평균 분양가 수준으로 정하고, 분양 1년이 넘은 미준공 단지만 있을 경우에는 해당 단지의 105%를 상한선으로 한 것이다. 준공 아파트만 있을 때는 평균 매매가격을 넘지 않도록 했다. 또 평균 분양가 산정방식을 기존 ‘산술평균+가중평균방식’에서 ‘가중평균방식’으로 변경해 평면 다양화로 분양가 규제를 피해가던 방법도 막았다.
이에 서울 강동구에 들어설 ‘미니신도시’급 대단지인 둔촌주공 아파트는 분양가 산정에 있어 큰 손해가 전망되고 있다. 11월께 일반 분양에 나서려던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일반 분양가를 3.3㎡ 당 평균 3300만~3500만 원 수준으로 정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 강화 기준에 따라 지난해 6월 강동구에서 분양한 ‘고덕자이’를 비교 사업장으로 정할 경우, 둔촌주공은 고덕자이의 당시 일반분양가(2445만 원)보다 5% 비싼 2567만 원에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
HUG의 비교 사업장은 동일 행정구역(시·군·구) 내에서 입지·단지 규모·브랜드 등 유사성을 고려해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1만2000가구에 달하는 몸집인 데다가 송파구에 인접한 입지이기 때문에 헬리오시티나 올림픽선수촌을 비교 사업장으로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분양가를 평균 매매가격에 맞출 수 있어 더 나은 조건이 형성된다.
하지만 HUG는 이 단지들을 비교 사업장으로 선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HUG 관계자는 “동일 시·군·구 내에서 비교 사업장을 선정하는 것은 확실한 원칙이기 때문에 흔들려선 안 되는 것이다”며 “예외가 있다면 강동구 내에서 아예 비교할만한 단지가 없을 때인데 현재 그런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분양가를 대폭 내려야 할 가능성이 커지자 둔촌주공을 후분양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퍼지고 있다. 다만 일반 분양분이 5000가구를 넘길 정도로 많은 데다가 강남에 견줄 만큼 인기 지역은 아니므로 후분양해서 리스크를 떠안긴 어렵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HUG의 분양가 기준 강화로 정비사업으로 인한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둔촌주공, 개포주공1단지 등 일반분양 물량이 많은 단지의 경우 2019년 하반기 분양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2020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며 “이 같은 분양가 규제가 업계 전반을 후분양 체제로 급격히 이동시킬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단기적인 공급물량 축소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둔촌주공 외에도 하반기 일반분양을 목표로 했던 서초 방배5구역 재건축도 혼란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조합 관계자는 “아직 HUG가 발표한 분양가 심사기준 내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며 “당초 10~11월에 분양 목표를 세우긴 했으나 그때 분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당초 3.3㎡당 평균 분양가 4800만 원 이상으로 점쳐지던 방배5구역의 경우 비교 사업장으로 올해 4월 공급한 ‘방배그랑자이’의 4657만 원 수준에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둔촌주공보다 나은 사정이지만 방배그랑자이 평균 분양가를 가중평균해봤을 때 4901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비교 사업장보다 3.3㎡ 250만 원가량 손해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