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올해 서울모터쇼는 제법 쌀쌀한 날씨에서 개막했습니다. 해마다 5월, 그러니까 어린이날 전후가 절정이었는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오토차이나’가 매년 5월 열립니다. 이를 피해서 좀더 주목을 받아 보자는 게 행사를 앞당긴 이유입니다.
조직위원회는 속내를 가득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더했습니다. ‘지속 가능하고 지능화된 이동혁명’이라는, 나름 그럴싸한 주제도 앞세웠지요. 나아가 역대 최대 규모인 227곳의 업체가 이번 모터쇼에 참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글로벌 메이저 모터쇼 버금가는 성대한 행사로 보입니다. 세계 최대 전자쇼 CES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공유경제라는 어젠다 대부분을 담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사정은 달랐습니다.
국내 타이어 3사는 이번에도 서울모터쇼를 등졌습니다. “모터쇼 같은 데 안 나가도 어차피 내수시장은 잘 팔린다”는 게 이유입니다.
그뿐인가요. 일본 토요타와 미국 GM에 이어 연간 1000만 대를 판매하는 독일 아우디폭스바겐그룹도 “판매 차종이 없다”는 이유로 행사를 등졌습니다. 수입차 시장에서 “차가 없어서 못 팔고 있다”는 볼보도 이번 모터쇼에는 안 나왔습니다.
지난 모터쇼, 그러니까 2017 서울모터쇼를 찾았던 일본 자동차 저널리스트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없는 국제모터쇼는 서울모터쇼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올해도 역시 심장을 방망이질할 만한 슈퍼카는 없습니다.
결국 빈자리는 자동차가 아닌 다른 기업들이 채웁니다. 전동 안마의자와 커피 머신, 신선식품 업체 등이 참가업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참가업체는 역대 최대인데 내용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국산차 메이커조차 서울모터쇼를 고의적으로 피해 신차를 내놓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서울모터쇼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냉큼 8세대 쏘나타를 선보였습니다. 쌍용차 역시 한 달 뒤 개막하는 서울모터쇼를 피해 먼저 신형 코란도를 공개했습니다.
국산차 관계자는 “10여 년 전에는 모터쇼 때 대통령도 오고 총리도 왔었다. 그런데 이제 주무부처 장차관조차 관심이 없다”고 푸념합니다. 어차피 그럴 바에는 별도로 신차 발표회를 열고 주목을 받겠다는 뜻입니다.
서울모터쇼가 VIP 한 명을 위한 행사가 아닌 만큼, 납득하기 어려운 푸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해는 됩니다. 그만큼 모터쇼의 위상이 추락했고, 참가한 업체들도 절박하다는 뜻이니까요. 서울모터쇼가 군소 행사로 전락했다고 우려하기 전에, 모터쇼의 근본적인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모터쇼의 진짜 가치는 VIP가 오거나, 또는 계산기를 두들겨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