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0년] ‘달러걷이’ 美에 신흥국 ‘부채발작’…고개 드는 ‘10년 주기설’

입력 2018-09-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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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연준 긴축 가속에 자국 통화 매도 압력·부채 10년간 3배 늘어

전 세계에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몰고온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발한 지 이달 15일로 10년이다. 10년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위기의 원흉이었던 미국 시장은 강력한 기업 실적에 힘입어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신흥국은 장기간 지속된 세계적인 금융 완화의 부작용으로 인해 곳곳에서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도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 부채가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에 새로운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마이클 하트넷 수석 투자 전략가는 현재 신흥국 상태를 이렇게 진단한다. 아시아 외환위기는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급락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와 한국 통화 약세가 발단이 됐다. 당시에도 미국 경제는 지금처럼 4%대의 높은 성장률이 계속되는 등 선진국 중에서도 유독 잘나갔다. 미국 정부의 강달러 정책도 한몫했다. 달러지수는 1995년 봄을 바닥으로 계속 뛰었고, 급기야 대외채무에 의존하던 아시아 각국 통화는 헤지펀드의 공매도 공세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결국, 해외에서의 자금 유입이 끊기면서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금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긴축 가속 영향으로 달러 가치가 오르면서 신흥국 통화에는 매도 압력이 거세다. 터키 리라와 아르헨티나 페소의 연초 대비 하락률은 40%에 달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데다 대외채무의 90%가량이 외화 표시 채무여서다. 여기에 정치적 혼란과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 저하도 문제다. 통화 약세는 터키, 아르헨티나에 그치지 않는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전염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를 예의 주시한다. 포퓰리즘 정권의 방만한 재정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것.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무후무한 규모의 금융 완화를 계속해 왔다. 이 영향으로 선진국의 금융자산 수익률이 하락하던 와중에 높은 수익률을 좇는 돈들이 신흥국 시장으로 유입됐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18년 3월 말 시점에 전 세계 채무 잔액은 247조 달러로 2008년 말 대비 43% 늘었다. 이 가운데 신흥국은 69조 달러로 3배나 늘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 경기가 호조를 보인다고 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미국은 전례 없는 규모의 금융 완화로 주식과 채권 등 금융 자산 가격은 크게 상승한 반면, 실물 경제 개선 여부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가계 부채는 리먼 사태 당시를 이미 넘어서며 새로운 위기의 씨앗으로 부상하고 있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10년 전의 2.3배, 나스닥지수는 3.6배로 성장했다. 2008년 9월 12일 시점에 1만1421.99였던 다우지수는 올 8월 31일 시점에는 2만5964.82로 10년 새 127.3% 뛰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0년 전 2261.27에서 8109.53으로 258.6%나 올랐다. 중앙은행이 방출한 유동성이 애플, 아마존을 비롯한 주요 기술 종목으로 흘러 들어간 까닭이다. 미국 국채 수익률도 하락(가격은 상승)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0년 전 3.72%에서 최근엔 2.86%로 0.86%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나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40%에 못 미친다. GDP는 10년 전 14조8352억 달러(2008년 3분기)에서 20조4025억 달러(2018년 2분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실업률은 6.1%(2008년 9월)에서 3.9%(2018년 7월)로 완전 고용 수준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평균 시급 상승률은 0.6%에 불과하다. 세제 개혁 효과 덕에 눈앞의 경기는 개인소비를 중심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실업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임금 성장은 둔화하는 한편 물가 상승 압력은 약한 상황이다. 주택 판매도 작년 가을께를 정점으로 부진하다. 주택 시황이 악화하면 팽창한 가계 채무 상환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미국 경기는 전후 최장 국면이지만 다시 금융위기가 촉발되기라도 하면 가계 부채가 뇌관이 될 수 있다. 가계 부채는 12조8600억 달러(2008년 3분기 기준)에서 올 2분기에는 13조2900억 달러로 금융 위기 때를 훌쩍 뛰어넘었다.

모건스탠리의 체탄 아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경제성장이 예상을 웃돌수록 세계 경기 사이클은 지속력에 손상을 입는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고용 증가가 미국 경제 성장을 뒷받침함으로써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를 초래, 달러 부채가 많은 신흥국의 채무가 실질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호황이 세계 경제의 리스크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감세와 재정 지출 효과가 옅어져 내년 하반기에는 미국 경제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도 더뎌져 신흥국에 대한 역풍도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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