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현대차그룹을 향한 압박수위와 강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거듭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을 촉구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은 30일 “현대차 주주로서 경영진이 발표한 자사주 일부 소각 및 추가 주식 매입 후 소각 계획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는 긍정적인 발전이기는 하지만 주주들이 경영진에 기대하는 바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다 효율적인 지주회사 구조의 도입 뿐만 아니라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환원 개선 △그룹 전반에서 기업경영구조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채택할 것을 재차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관망세를 이어온 엘리엇은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압박 수위와 강도를 높이고 있다. 거시적 제안으로 포문을 연 이후 구체적인 요구안을 내놨고 현대차그룹의 주요 현안에 대해 즉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엘리엇, 현대차 겨냥한 압박 수위 높여 = 지난달 28일 현대차그룹은 모듈과 애프터서비스(AS)부품 사업부문을 떼어낸 현대모비스를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는 출자구조 재편안을 발표했다.
이후 약 일주일만인 이달 4일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현대자동차그룹의 10억 달러 어치 보통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지배구조 게편 관련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
이후 별다른 입장이 없었던 엘리엇은 23일 ‘현대 가속화 제안’(Accelerate Hyundai Proposals)을 통해 현대차와 모비스가 합병해 지주회사로 만드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의 현재와 미래의 모든 자사주 소각 △배당지급률을 순이익 기준의 40∼50%로 개선하는 배당금 정책 △사외이사 3명 추가 선임 등을 요청했다.
이를 기점으로 현대차그룹을 겨냥한 엘리엇의 반응 속도와 압박 수위는 더욱 거세졌다.
엘리엇은 자신들의 제안이 "공정거래법에 위배된다"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판단에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현대차 자사주 소각 발표 직전인 26일 “엘리엇 요구를 따르면 공정거래법을 위반하게 된다”며 “엘리엇의 요구는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엘리엇 제안대로 지배구조가 개편되면 현대모비스와 현대차가 합병된 뒤 그 아래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 금융사를 자회사로 두게 된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지주사는 금융사를 자회사로 두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금산분리’ 원칙이다.
엘리엇은 김 위원장 발언 이튿날 입장 자료를 통해 "금융 자회사를 지주사 밑에 두면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며 "그래서 엘리엇은 2년 동안의 유예기간 내에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명확하게 밝혔다"고 밝혔다. 사실상 지주사 전환 이후 금융 계열사 매각을 촉구하는 셈이다.
◇현대차그룹 "주주의견 존중…설득 나설 것"=현대차는 김 공정위원장 발언 이튿날(27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보통주 661만주, 우선주 193만주 등 총 854만주의 이익소각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발행 주식 총수의 3% 수준으로 현대차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14년 만이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의 압박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지만, 현대차는 엘리엇과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현대차는 보유 중인 자사주 중 보통주 441만주, 우선주 128만주 등 569만주를 소각하고, 또한 보통주 220만주, 우선주 65만주 등 총 285만주의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29일 인적분할 주주총회까지 많은 주주들을 설득할 것"이라며 "자사주 소각은 지배구조 개선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