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공개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로드맵은 향후 다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모델 케이스로 자리매김시키려는 의도가 농후해 보인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17일(현지시간) 무역적자 축소를 골자로 환율조작 금지와 원산지 규정 강화, 미국 투자에 대한 장벽 철폐 등 22개 항목이 명시된 NAFTA 재협상 목표 명단을 발표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목표를 발표하면서 “너무 많은 미국인이 공장 폐쇄와 일자리 수출, 그리고 정치인들이 약속을 어긴 것으로부터 고통을 받아왔다”며 “공정한 딜을 협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정부가 지난 5월 의회에 NAFTA 재협상 방침을 통보했기 때문에 3개월 간의 회람 과정을 거쳐 이르면 오는 8월 16일부터 재협상이 시작될 예정이다.
명단 첫 번째에는 ‘미국 무역 불균형을 개선하고 NAFTA 회원국과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올랐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 최우선 순위가 무역적자 축소에 있음을 다시 확인시킨 것이다. 최대의 표적은 멕시코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지난해 캐나다에 대해서는 77억 달러(약 8조6925억 원)의 흑자를 냈지만 멕시코와의 무역에서는 63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 목표에 포함된 원산지 규정 강화 방침도 멕시코를 겨냥한 것이라는 평가다. 현행 NAFTA 규정에서는 자동차의 경우 역내 부품 조달비율이 62.5%를 넘으면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멕시코는 아시아 등에서 부품을 수입해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조달 비율이 높아지면 미국 내 부품 생산이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NAFTA 재협상을 통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특히 통상 전문가들은 환율조작 금지가 목표에 포함됐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무역협정에 환율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도 환율 조항 도입을 주장했지만 환율이 급변동하는 상황에서 개입을 제한하기는 어렵다는 일본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NAFTA에 환율 조항을 포함시킨 건 한미 FTA 개정이나 향후 전개될 일본과의 FTA 협상 등 아시아 국가와의 무역협정에서 전례를 만들기 위한 본보기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미 재무부는 한국을 환율 조작 가능성이 있는 감시 명단에 올려둔 상태다.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NAFTA 재협상에도 들어가는 만큼 트럼프의 다음 타깃은 한미 FTA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트럼프는 대선 당시 유세에서는 물론 취임 이후에도 꾸준히 한미 FTA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면서 재협상을 요구했다.
USTR는 지난 12일 우리나라 정부에 FTA 공동특별위원회 개최를 요구하면서 ‘개정과 수정(amendments and modifications)’을 위한 후속 협상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의 법률적 해석에 따르면 재협상은 협정을 전면적으로 뜯어 고치는 것이며 개정은 이보다는 한 단계 낮은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파리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우리는 나쁜 무역거래로 완전히 황폐해졌으며 한국과도 끔찍한 거래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한국과 재협상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에 대해 명목상으로는 개정 협상이지만 실질적 내용으로 들어가면 재협상에 가까운 수정을 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