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국민연금 CIO라는 자리

입력 2017-02-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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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업금융부장

서울 강남 국민연금관리공단 사옥 바로 옆엔 커피숍이 있다. 통상 있는 그런 체인점이다. 근데 여기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무개 증권사 사장, 대형 자산운용사 사장, 잘나가는 사모펀드 대표, 시중은행 임원 등이 명함을 교환한다. 서로 안부를 묻고, 정보를 교환하는 듯한 대화를 나눈다. 또 다른 이들은 구석에서 서류를 보며 앉아 있다. 마치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의 집합소 같다. 커피숍은 이런 사람들로 빽빽하다. 서로가 왜 왔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 빙그레 눈인사를 나눈다.

우선 국민연금이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기금 운용 규모는 550조 원을 넘었다. 일본,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다. 세계 투자은행들도 국민연금 앞에선 벌벌 떤다. 전 세계 최고의 전주(錢主)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우월적 지위를 의미하는 ‘슈퍼갑’이다.

자산 운용 범위도 넓다. 국내 주식, 채권부터 시작해 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일부 복잡한 파생상품을 제외한 자산에 투자한다. 그런 국민연금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금융기관은 사활을 건다. 국민연금의 자금을 받는다는 것이 곧 국제 자본시장에선 신뢰와 능력의 잣대가 돼서다.

이 커피숍에 소위 ‘잘나가는’ 금융기관 임원들이 모여 있는 것은 국민연금 운용역들이 외부에서 커피나 차를 잘 마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만나 주질 않으니 사무실로 찾아가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미리 와서 대기하는 곳이 바로 이 커피숍인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커피 한잔 정도는 마셔 줘도 되는 것 아니냐”며 푸념할 정도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역의 자기 관리가 원래 이렇게 철저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민연금의 도덕적 해이가 처음으로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은 지난 2011년이다. 당시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 기금이사는 평가 보고서를 조작해 등급에서 탈락한 대형증권사를 위탁사로 선정했다.

또 일부는 거래증권사 선정 작업 과정에서 부적절한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 관련자들이 줄줄이 퇴사했다. 급기야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공단 내부 직원의 외부 재취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2013년에는 대외비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건이 터졌다. 연금의 자산배분 전략을 담은 대외비 보고서가 전직 국민연금 간부였던 자산운용사 대표의 손에 전달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일련의 사건은 국민연금에는 약이 됐다.

내부통제 제도는 외국 연기금보다 더욱 강화됐다. 내부통제 제도를 제대로 못 갖춘 몇몇 국내 다른 연기금의 롤모델이 됐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최근 한 사람이 또 조직을 망치고 말았다.

국민연금은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수차례 압수수색도 받았다. 청와대 지시를 받고 삼성을 위해 삼성물산 합병을 찬성했다는 의혹에서다. 국민연금이 윗선의 지시에 따라 삼성을 위해 태도를 바꾼 것인지는 특검이 밝혀낼 문제다. 그것은 나중에 확인할 부분이다. 하지만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이 부회장의 집무실에서 만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일반 운용역들은 오해받기 싫어 커피조차 외부에서 마시질 않는다. 그런데 정작 기금운용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합병을 논의하는 와중에 대상 기업의 오너 집무실로 찾아갔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떠나, 기금운용본부장은 자기 관리에 매진하고 있는 국민연금 운용역에게 먼저 사과할 일이다. 당시에도 소문이 있었다. 커피숍에 모인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본부장의 행보는 그때부터 구설에 올랐다.

더 큰 문제는 현 기금운용본부장을 둘러싼 의혹도 끊이질 않는 점이다. 이번에는 본부장 선임 자체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 명의 책임자가 조직을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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