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소개다. 사람 이야기를 즐겨 읽는 필자에게 리처드 도킨스의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은 조금 특별한 책이다. 자신의 유소년기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책을 읽는 것은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 대신 다큐멘터리나 논픽션 성격의 글을 원하는 독자라면 도전할 만한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 ‘만들어진 신’ 등 화제작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작가다. 그는 진화생물학을 퍼뜨리는 데 맹활약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회의주의와 무신론을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의 도발적인 주장은 불편함을 안겨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유소년기의 기억들을 어쩌면 이토록 생생하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 이런 감탄사를 연신 쏟아내도록 만드는 자서전이다. 그만큼 그의 기억력과 문장력이 탁월하다는 말이다. 자서전의 시작 부분에 자신의 가계도를 큼직하게 정리해 제시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늘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운’이라는 표현에 담아낸다. “모든 사람의 존재는 그보다 훨씬 더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온 운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탄생한 뒤 벌어진 모든 사건이 정확히 그 시기에 그 장소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베일리얼 칼리지의 조정 선수였던 할아버지의 흑백 사진 속에서 새삼 ‘삶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라는 확인을 다시 하게 된다. 도킨스와 그 가계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과정을 아름답게 글로 옮기는 그의 재주도 놀랍지만 중간중간에 그의 지식을 은근슬쩍 집어넣는 것도 그다운 일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신생아의 외모에서 모계와 닮은 점보다 부계와 닮은 점을 찾으려고 유달리 애쓴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지적했다.”
올해 75세인 도킨스는 유년기를 영국의 식민지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보냈다. 1930년대의 기억과 1940년대의 체험은 선진국의 좋은 집안에서 나서 유소년기를 보내는 것이 어떤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자서전에는 어머니가 남긴 기록들은 물론 친인척들이 남긴 기록들도 수없이 등장한다. “당신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새삼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된다. 도킨스의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들은, 뛰어난 필력을 가진 자손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록을 통해 사는 복을 받은 이들이 되었다. 도킨스 집안은 조상 대대로 대영제국의 공무원으로 일해왔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사직하고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정함에 따라 도킨스를 비롯한 형제들의 삶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부모의 결정에 따라 자손들의 삶은 크게 출렁거린다. 잘사는 나라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작가의 기록물은 매우 풍성하다. 작가의 뛰어난 기억력과 풍부한 체험담에도 탄복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이 있다. 바로 조상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책에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생에서 나를 만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옥스퍼드였다”라는 고백은 독자들로 하여금 부러운 마음이 들게 만들 것이다. 소설 대신 무엇인가를 읽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