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본 3조 원 이상 종합금융투자회사(이하 종투사)의 기업 대출 규모가 3년 만에 5배 가량 커졌다.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한국형 헤지펀드 정책 등 각종 규제 완화와 먹거리를 확대하려는 대형사들의 의지가 결합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소수 회사의 독식이 법으로 보장되면서 중·소 증권사 차별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기업 신용공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종투사의 기업대출은 올해 1~7월 중 2조925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규모인 2조851억 원을 상반기 중 넘어선 것이다. 2013년(4151억 원)과 비교하면 무려 5배 증가한 수치다.
현재 자기자본 3조 원 기준을 맞춰 종투사 자격을 획득한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총 6곳이다. 미래에셋은 지난 6월 인가를 얻은 새내기다.
정부는 2013년 국내에서 글로벌 IB과 견줄만한 회사를 키운다는 목표로 종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일정 자기자본 이상 증권사에 혜택을 몰아줘 정체된 증권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종투사 인가를 얻으면 일반 증권사 면허로는 불가능한 기업 신용공여(대출ㆍ지급보증 등)와 헤지펀드 거래·집행·결제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전담중개업(프라임 브로커리지, PBS)을 할 수 있다. 기존 증권사도 기업금융 업무를 할 수 있지만 자기자본을 직접 대출하는 것이 아닌 각종 기관의 자금을 끌어다 중개해주는 ‘브릿지론’에 그쳤다.
규제완화로 소수 종투사의 독주가 가속화하는 상황이다. 종투사 PBS 계약 현황을 통해 산출한 한국형 헤지펀드의 총 설정액은 지난달 말 기준 6조3750억 원에 이른다. 올 초 3조 원대 규모에서 폭증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문사모집합투자업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증권사의 인하우스(내부) 헤지펀드가 허용되는 등 규제가 대폭 완화된 영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글로벌 IB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국내 증권사의 기업금융 부문은 적다. 하지만 2013년 제도 개선 후 꾸준히 대출 실적이 증가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 증권사 IB부문 담당자는 “대형 증권사들이 내부적으로 IB부문 인력을 보강하고 윗선에서부터 관련 영업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 정책적 기조와 맞물려 효과를 본 듯 하다”며 “초대형 IB 제도가 지난 8월 등장한 만큼 더 풀린 규제를 바탕으로 종투사의 대출 등 기업금융 실적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종투사의 기업 대출 확대가 금융당국이 의도한 대로만 커 나갈 지는 아직 미지수다.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중소기업 등 산업구조 재편과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자금으로 흘러가기보다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돈놀이’ 사업에 치중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종투사에게 준 혜택이 중·소 증권사에 지나치게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종투사 대출은 자기자본 투자보다 브릿지론 형태가 아직도 많다. 브릿지론은 자기자본이 3조원이건 3000억원이건 증권사가 지는 리스크에 차이가 없다”며 “그럼에도 성장세가 높은 PBS 부문 등‘초고급’ 먹거리를 소수에게만 보장하는 것은 헌법소원 감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