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화가 조영남의 ‘사달’

입력 2016-06-20 14:39 수정 2016-06-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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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제약회사 임원 내외와 부부 동반 모임을 했다. 저녁을 먹은 후 그분들이 자주 간다는 동부이촌동의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한쪽 벽은 엘피(LP) 레코드판으로, 나머지 벽은 마이클 잭슨, 마돈나,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넌, 폴 매카트니 등 전설의 팝 가수 사진으로 가득한 음악 카페였다. 과거의 한 시점에서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 참 좋았다. 대학로의 학림다방에 온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세 사람 모두 맞장구를 쳤다. 엘피의 가장 큰 장점은 추억을 끄집어내는 따뜻한 사운드이다.

2010년 가요계에 7080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온통 아이돌 판이던 텔레비전 방송에 통기타를 메고 홀연히 나타난 쎄시봉 열풍이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이 주인공이다. ‘쎄시봉’(C’est si bon)은 ‘멋있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그룹명처럼 매력 넘치는 네 명의 남자 가수가 부르는 감미로운 노래와 정감 어린 이야기에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세대들도 흠뻑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는 영화 ‘쎄시봉’의 마지막 대사처럼 멤버 모두 나이를 잊은 청년의 모습으로 1960, 70년대의 시대적 아픔과 희망을 노래했다. 그리고 그 노래 속에는 가슴 시리도록 눈부신 청춘이 담겨 있었다.

지난 주말 열릴 예정이었던 ‘2016 쎄시봉 친구들 콘서트’가 무기한 연기됐다. 1억8000만 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영남 때문이다. 5월 중순 그림 대작 사건이 터지기 전 그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노래는 물론 글, 연기, 화려한 말재주까지…. 그는 자신을 ‘그림 그리는 가수’라 하여 직업을 ‘화수’라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짓된 삶은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인 법. “화투를 너무 오래 갖고 놀다가 쫄딱 망했다”라는 한탄처럼 그는 전대미문의 ‘대작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거짓말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다.

사달은 사고나 탈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그런데 발음과 글꼴이 비슷해서인지 사달과 사단을 헷갈려 하는 이가 많다. 사단(事端)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이나 사건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첫머리, 또는 단서(端緖)를 의미한다. 즉, 어떤 일이 발생한 원인을 표현할 때 어울리는 말로, 실마리 혹은 단초(端初)로 바꿔 쓸 수가 있다. 따라서 ‘사단’은 두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구해야) 하고, ‘사달’은 나지(발생하지, 생기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달’과 ‘사단’처럼 소리와 글꼴이 비슷하지만 의미가 완전히 달라 잘 구분해 써야 할 말로 ‘절단’, ‘결단’, ‘결딴’이 있다. “어떤 일이나 물건 따위가 아주 망가져서 도무지 손을 쓸 수 없게 된 상태” 또는 “살림이 망하여 거덜 난 상태”를 말할 때는 순 우리말 ‘결딴’이 어울린다. ‘절단’, ‘절딴’, ‘결단’이라 말하고 쓰는 이가 많은데 맞지 않는 표현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절단(切斷)’은 “자르거나 베어서 끊는 것”을 뜻한다. 절단을 소리 나는 대로 쓴 ‘절딴’은 존재하지도 않는 말이다. 결단(決斷)은 “그는 오랜 생각 끝에 결단을 내렸다”처럼 결정적 판단을 하거나 단정을 내림 또는 그런 판단이나 단정을 뜻한다.

남자는 하루 평균 6번, 여자는 3번 거짓말을 한단다. 남자의 경우 “당신 뚱뚱하지 않아”, “술 많이 안 마셨어”, “집에 다 왔어. 바로 앞이야”등의 말을, 여자는 “새로 산 거 아니야, 원래 있던 거야”, “싼 거야, 세일 상품이야” 등의 거짓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거짓말들이라 다행이다. 이 정도 거짓말로 사달 날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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