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최고 경영자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일정기간 경영 공백이 생겼을 때 그 그룹은 어떻게 움직일까.
대부분의 그룹들은 구조조정본부나 전략경영본부 등 사전에 짜여진 각본(메뉴얼)대로 시스템적으로 경영공백을 최소화 하고 있지만 일부 그룹이나 기업의 경우 '외형상의 '비상경영체제'이외에는 별 다른 대책을 마련해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구속됨에 따라 국내 주요 그룹들의 총수 부재라는 위기가 도래했을 때 각 기업들이 꾸려갈 '비상경영체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주요 재벌 그룹사들의 총수 부재 및 각종 위기상황에서의 경영시스템이 어떤식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최고경영자 공백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이 업계 최대 화두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실제상황을 맞은 한화그룹측은 "1999년부터 계열사별 책임경영제를 도입, 계열사별 경영에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룹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경영과 대형 M&A의 경우 현재 올스톱 상태이다.
김 회장 사건의 흐름으로 놓고 볼때 아직까지 그룹 총수의 1인 지배체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 상 총수의 부재는 그만큼 그룹경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반증인 것이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별 책임경영제를 실시하고 있어 그룹경영에 영향을 미칠만한 중대사안이 아닌 경우에는 각 계열사별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룹경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상시 가동되고 있는 전략기획위원회를 통해 중대 사안을 결정하게 된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존 삼성그룹의 경영현안을 다뤄왔던 '삼성기업구조조정위원회'가 전략기획위원회로 개편, 그룹의 미래 중장기 전략을 협의하고 그룹 총수 부재시에도 중대한 현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전략기획위원회는 각 계열사 중심의 자율·책임경영 체제의 확립을 위해 이뤄진 것으로 계열사별 책임경영이 더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략기획위원회는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을 위원장으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순택 삼성 SDI 사장 ▲이수창 삼성화재 사장 ▲이종왕 삼성그룹 법무실 고문 ▲김인주 삼성전략기획실 사장 등 총 9인으로 구성됐다.
현대ㆍ기아차 그룹의 경우 다른 그룹에 비해 그룹 총수의 영향력이 강한 곳으로 재계는 평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각 계열사별로 대표이사들의 책임아래 개별 경영이 이뤄지고 있어 그룹 총수 부재라는 상황이 그룹경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지난해 9월 계열사 자율경영에 걸림돌로 지적됐던 기획총괄본부(사실상 구조본 역할)를 기획조정실로 축소, 개편했다.
다만 신차 출시나 글로벌 경영 등에 관한 부분은 현재 박정인 기획총괄담당 석 부회장이 모든 것을 총괄해 업무를 진두지휘하게 된다.
현대차 그룹 관계자는 "개별기업인 현대차의 경영에 관한 문제는 정 회장 부재시 김동진 부회장이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며 "지난해 정 회장이 구속돼 미국 현지공장 건립 등이 지연됐을 때는 그룹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 경영공백을 최소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대차그룹도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이 없기 때문에 중요사안의 경우 수석 부회장을 중심으로 각 계열사 대표들이 중요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LG그룹 역시 각 계열사별로 책임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경영상 위험요인을 전담관리하는 그룹차원의 부서가 지난 2004년 설치·운영 중이다.
LG그룹은 지주회사인 (주)LG 소속의 윤리경영 관리부서인 정도경영 T/F팀을 두고 T/F 내부에 '리스크 매니지먼트팀(RM팀)'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RM팀은 전사적 차원의 위기상황을 관리하고 있으며 각 사별 위기대응에 대한 총괄적인 지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LG그룹이 지주회사 출범 이후 구조조정본부가 폐지되고 자회사별 독립경영이 가속화됨에 따라 지주회사-자회사간 연결고리가 느슨해진 것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이를 통해 도출된 위험인자는 위험도의 경중을 따져 수치화하고 이를 LG그룹 경영정보시스템(EIS)에 연동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 2003년 9월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공식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그룹차원의 비상경영시스템이 매뉴얼화 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 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이던 시절에는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구조본을 구심점으로 그룹경영을 대신한 바 있다.
SK그룹은 구조본을 해체하면서 그룹체제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기존 계열사 간 관계를 'SK브랜드와 기업문화만을 공유하는 독립기업의 네트워크형태'라는 새로운 개념의 기업결합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
SK그룹에 따르면 구조본 해체 이후 각 계열사별 이사회 기능을 강화, 그룹 총수 부재시에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등기이사로 있는 SK(주)의 경우, 다른 이사진과 마찬가지로 한 표를 행사하는 이사 역할"이라며 "최 회장의 부재시에도 이사회를 통한 의사결정에는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모든 사안별로 대응책 마련이 다르다"며 "다만 최 회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점에서 그룹 이미지에 영향은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GS그룹(회장 허창수)은 그룹 출범 당시부터 지주회사체제로 출발, GS홀딩스의 이사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역할을 하고 있다.
GS홀딩스 관계자는 "이사회 정관에 회장 유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부회장-사장 순으로 이사회 의장역할을 수행한다고 나와있다"며 "허창수 회장의 유고시에도 커다란 경영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GS건설·GS칼텍스 등 각 계열사별로 책임 경영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각 계열사별 사안은 계열사 대표 재량으로 사업을 진행한다고 그룹측은 설명했다.
한진그룹은 "그룹 사업의 특성상 그룹경영의 개념이 다른 그룹과는 다르다"며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우 이종희 총괄사장이 전반적으로 회사경영을 컨트롤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은 이어 "각 계열사별 경영에 있어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관리시스템은 구비돼 있지만 조 회장 부재시 대응방안은 별도의 메뉴얼로 구비돼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는 현재 그룹의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전략경영본부가 그룹 경영을 총괄적으로 컨트롤하고 있다.
전략경영본부는 ▲홍보·디자인부문 ▲기획재무부문 ▲경영관리부문 ▲신규사업부문 등으로 이뤄졌으며 오남수 본부장(사장)이 그룹 전반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역시 총수 부재시 대응방안에 대한 메뉴얼은 따로 준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과거 故 박정구 회장이 투병 중에 박삼구 현 회장이 그룹 경영전반을 관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그룹경영의 특성상 박삼구 회장 부재 시, 그룹 전략경영본부를 중심으로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이 그룹경영을 관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