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만에 하나라도 부지런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자질구레한 일에도 주의하시어 큰 덕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 데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 쌓은 공이 헛되지 않도록 하소서.”[嗚呼 夙夜罔或不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功虧一簣] 여기에서 나온 말이 공휴일궤(功虧一簣)다. 조금만 더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마무리가 부족해 허사가 됐다는 뜻으로 쓰인다.
세종 15년(1433) 7월 7일의 실록에 그 말이 나온다. 도읍과 능의 자리를 정하는 일에 의견이 분분해 답답해진 세종이 풍수지리에 밝은 자를 널리 골라 경연에 들이라고 하자 지신사(知申事) 안숭선(安崇善) 등이 이렇게 반대했다. “전부터 이미 경전의 학문만을 한결같이 해왔는데 이제 만일 잡된 학문을 강론한다면 오랜 적공이 한 번 실수로 헛되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旣已終始典學 今若講習雜學 則竊恐功虧一簣]
그러더니 왕의 뜻을 완전히 거스르면 안 되겠던지 “그러나 그 학문도 역시 국가를 위해 한 가지 소용되는 것이오라 폐할 수는 없사오니 원컨대 경학에 밝은 신하를 골라 강습하게 하시되 제조(提調)를 두어 그 부지런하고 태만함을 조사하며 그 잘하고 못함을 살피게 하소서”라고 했다. 세종은 이 논의 이후 네 명을 학관으로 삼고 정인지를 제조로 임명했다.
여오의 개에 대해서는 10월 5일자 ‘상지지계(喪志之戒)’에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