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의 무대는 언제나 시선을 압도했다. 지금도 엄정화를 보면 무대 위 잔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배우가 된 엄정화에게 ‘섹시 디바’ 수식어는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어쩌면 가장 탈피하기 힘들었던 선입견이었을지도 모른다. ‘댄싱퀸’, ‘몽타주’, ‘관능의 법칙’ 등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그녀의 지금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관객은 더 이상 엄정화를 의심하지 않는다. 13일 개봉한 영화 ‘미쓰 와이프’(제작 영화사 아이비젼, 배급 메가박스 플러스엠, 감독 강효진)도 마찬가지다. 정작 엄정화는 “떨려요”라고 입을 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영화 개봉을 앞두면 항상 떨려요. 이번에는 대작들과 같이 개봉하니 자꾸 소심해지더라고요. 시사회에서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유일한 가족 코미디라는 점이 힘이 돼요. 부담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이제는 엄마 역할이 어색하지 않다. ‘미쓰 와이프’에서도 모성애 연기를 소화한 그녀였다. 엄마 역할이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기자의 질문에 “배우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여배우에게 엄마 역은 자연스럽게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엄마가 되죠. 드라마 ‘아내’에서 처음 엄마 역을 제안받았을 때 반가웠어요.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역을 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에요. 그 전에는 화려하고 차가운 느낌의 커리어 우먼 역을 주로 했거든요.”
‘미쓰 와이프’에서 엄정화가 맡은 연우는 잘 나가던 싱글 변호사였지만 교통사고를 당한 후 구청 공무원 성환(송승헌 분)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과거의 상처도 있고, 모든 것을 닫아놓고 오로지 성공만 바라보며 사는 여자예요. 어릴 때부터 ‘난 정말 보란 듯이 성공할거야’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죠. 자신을 더 외향적으로 꾸며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도 그런 감정을 녹여나가야 했죠.”
평범한 남편이기엔 정말 잘생긴 송승헌은 엄정화가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였다.
“(송승헌을) 보고 있으면 참 반듯해요. 아빠 역이 처음이라 도전이 됐을 거예요. 코믹하고 허당기 많은 역할이라 사랑스러울 수 있지만 반대로 안 어울릴 수도 있죠.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남자 배우가 연기할지 정말 사랑스럽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송승헌이 연기한 성환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요.”
결혼은 모든 미혼 여성들에게 하나의 숙제처럼 다가온다. 엄정화도 아직 미혼이다. 그녀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일까.
“혼자 사는 게 편해요. 가끔은 결혼이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나만 봐주는 남편이 있고, 제가 엄마한테 그랬듯 절 사랑해줄 자식이 있다는 건 소중한 것 같아요. 엄마 역을 많이 했다고 했지만 평범한 남편과 아이가 있는 제대로 된 가정은 처음이에요. 제 또래 여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재밌게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정화는 이제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다. ‘미쓰 와이프’처럼 여배우가 전면에 나서는 작품은 더욱 주목받는다. 남자 배우 중심일 수밖에 없는 충무로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여배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영화의 개봉을 더 기다렸어요. 영화의 흥행이 안 좋으면 제가 가고 싶어 하는 지점까지 도달할 수 없겠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어쩔 수 없는 여배우의 숙명이죠. 부담감을 이겨내면 그 시간을 대변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어요. 어떤 역할이든 하고 싶어요. 실생활을 배경으로 심리를 진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