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기를 보려고 5년을 기다려왔다니.”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를 지켜본 마이크 타이슨의 말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는 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맞붙었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경기전부터 ‘세기의 대결’로 주목받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용이 없었다. 지루한 경기 끝에 메이웨더가 3-0 판정승으로 세계복싱평의회(WBC)와 세계복싱협회(WBA), 세계복싱기구(WBO)의 웰터급 통합 챔피언이 됐다. 이로써 메이웨더는 1승을 추가해 무패행진(48승·26KO)을 이어가게 됐다.
파퀴아오는 메이웨더를 상대로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지 못했다. 자신의 장기인 스피드를 살려 연타를 날렸지만 추가적인 공격을 이어가지 못했다. 메이웨더의 카운터에 대한 우려 속에 공격 흐름이 끊겼다. 반면 메이웨더는 링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메이웨더가 자랑하는 숄더롤 등 방어기술을 비롯해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파퀴아오의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방어 위주로 경기를 펼치다 분위기가 넘어간다 싶을때는 과감한 선제공격으로 기세를 올렸다.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시작된 경기는 메이웨더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적극적인 공격을 펼쳐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이내 지루한 탐색전이 시작됐다. 두 선수는 가벼운 잽으로 서로의 반응을 살폈다. 1라운드 이후 파퀴아오가 분위기를 잡는듯 했지만 눈에 띄는 우세는 점하지 못했다. 파퀴아오가 치고 들어가면 코너까지 물러난 메이웨더가 재빨리 끌어안으며 흐름을 끊었다.
각자에게 기회는 있었다. 파퀴아오는 4라운드에 메이웨더의 안면에 훅을 꽂아 넣으며 기회를 잡았다. 강력한 일격에 메이웨더는 제대로 충격을 받았고 파퀴아오는 연타를 퍼부었다. 그러나 메이웨더의 단단한 방어를 뚫지 못했다. 기세를 살짝 내준 메이웨더는 5라운드에 바로 공격에 나서 파퀴아오의 안면을 강타해 빚을 갚았다.
확실한 치명타를 입히지 못한 두 선수의 방어적인 경기가 시작됐다. 긴장감은 사라지고 지루함만 남았다. 메이웨더는 철통 방어에 나섰고 파퀴아오는 조금 더 적극적일 뿐이었다. 파퀴아오가 마지막 12라운드에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끝까지 어정쩡한 공격을 펼쳤다. 메이웨더는 거리를 벌리며 링 안에서 파퀴아오를 상대로 술래잡기를 했다. 라운드 종료를 앞두고 승리를 확신한 듯 한 손을 들고 세레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결국 3명의 심판은 만장일치(118-110·116-112·116-112)로 메이웨더의 손을 들어줬다. 통계전문기업 컴퓨북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메이웨더는 펀치 성공 148회로 파퀴아오(81회)보다 많은 타격을 성공시켰다.
두 선수는 12라운드 경기를 모두 소화하고도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얼굴엔 상처하나 없이 말끔했다. 승리한 메이웨더는 환호했지만 지루한 경기에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초당 11만 5700달러(약 1억2500만원)에 이르는 대전료에 어울리지 않은 경기였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를 가득채운 1만6500명의 관중은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경기를 지켜본 오스카 델라 호야는 트위터를 통해 “복싱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했다.
한편 파퀴아오는 경기가 끝난 후 “좋은 싸움이었지만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다”며 패배를 아쉬워했다. 그는 “메이웨더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멤돌기만 했다. 상대가 그런 경기운영을 펼친다면 많은 펀치를 날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